L선배는 "괴물이 되지 말라"고 말했다

0. [들어가며] - 찾고 만나서 듣고 쓰다

by 송승환

'기레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입니다. 시민들은 왜 언론과 기자에 화가 나 있을까.


2016년 수습기자를 떼고 첫 부서인 법조팀에 배치 받았을 때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점심시간에 순댓국집에 데려간 L선배는 저에게 "괴물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청을 출입하다보면 검사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이들과 거리두기를 제대로 못 하면 '괴물'이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L선배가 그때 말한 괴물이 기레기였단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기자들은 답답해합니다. 어떻게 기사가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욕만 한다고 억울해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사가 나오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하는 기자는 드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시민은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기자는 억울해 하는 상황에 다리를 놓고 싶었습니다. 서로 잘 알아야 제대로 논쟁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언론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사회 모든 영역이 언론의 감시로 투명해지고 더 믿을만해졌습니다. 언론만 빼고요. 언론은 감시 받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가장 불투명합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진 게 없는데 자꾸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믿으라고 합니다. 이제 눈높이가 높아진 시민은 생산 과정을 알 수 없는 결과물은 믿지 않습니다.


언론이 작동하는 방식, 기사를 만드는 과정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알리려 합니다. 알아야 언론에 대한 비판도 더 아프고 정확해질 것이고 억측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치자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처벌과 규율로 바로잡을 수 있단 위험한 발상도 자주 힘을 얻습니다. 언론에 재갈을 물렸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은 어딜까요? 언론을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면서 언론개혁 논의가 진행되길 바랍니다.


책의 구성인 '찾다-만나다-듣다-쓰다'는 저에게 저널리즘의 ‘가나다’를 가르쳐 준 L선배의 취재 지론입니다. 기자가 하는 일은 이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매일 기사거리를 '찾고', 취재원을 '만나서', 중요한 정보를 '듣고',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는' 일입니다. 그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원칙을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자들이 쓴 다른 책들처럼 과거 취재를 회상하는 영웅담에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널리즘 기본서를 몇 권 읽고 주요 개념을 요즘 언론 환경에 적용해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생각하다] 머리말이 붙은 글들입니다. 이 내용은 중앙일보·JTBC 입사동기인 서효정, 이태윤, 정해성, 최수연 기자와 함께 한 공부모임 '주저스(주니어기자 저널리즘 스터디)'를 진행할 때 제가 발제했던 내용을 고쳐 쓴 것입니다.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더 오랜 시간 고민하고, 더 실력 있는 기자들에게 역할을 미뤄둘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된지 너무 오래 되지 않아 아직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이 가능하고, 대단한 특종 기자보다 평범한 대다수 기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발제와 취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저널리즘에 대해 말한다는 게 부끄럽기만 합니다.


취재 윤리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에 부담감도 큽니다. 취재 윤리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조금씩 오랫동안 썼는데 다 써놓고 다시 앞부분을 보니 그 사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다른 기자나 시민의 시각에서, 시간이 지나 나중에 읽힐 때 부끄러워질 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땐 맞았어도 지금은 아닐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놓습니다.


이 글을 통해 시민과 기자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지길 희망합니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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