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쓰다] - 중앙일보 ‘썰리’의 초단문체
썰로 푸는 이슈 정리 '썰리'는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에서 수만 회 다운로드 한 뉴스·시사 애플리케이션이다. 2017년 중앙일보 디지털팀에 카카오 출신 이석우 대표가 오면서 조직을 개편하고 새로 만든 서비스 중 하나다. 당시 사회부에 있던 나는 "디지털 서비스에 관심이 많을 것 같은 젊은 기자"로 차출돼 썰리 서비스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썰리팀의 문제의식은 2030세대가 텍스트 뉴스를 잘 보지 않고,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카드뉴스, 짧은 영상뉴스 등이 많이 나왔지만, 텍스트 뉴스의 대안은 없었다.
썰리팀이 제안한 문제 해결 방식은 텍스트의 문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당시 기획자였던 테드와 스티브(중앙일보 디지털팀은 수평적 관계 형성을 위해 영어 이름을 썼다)는 2030세대가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등으로 대화하는 것에서 창안해 대화 형식으로 뉴스를 전달하기로 했다.
콘텐츠 제작을 주로 맡았던 나는 여기에 초단문체를 적용했다. 채팅할 때 한 문장을 다 쓰지 않더라도 의미 단위로 잘라서 전송하는 것처럼 썰리도 의미 단위로 메시지의 줄 바꿈을 했다. 요즘 세대가 독해를 하는 속도에 맞춘 건데 나는 이걸 '초단문체'라고 불렀다. 애초에 단문으로 작성한 기사체를 의미 단위로 한 번 더 쪼갰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썰리의 이름부터 대표 색상, 스크롤 속도, 이모티콘 등까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두 직접 상의해 결정했다. 월급을 받으면서 스타트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서비스의 큰 방향과 이용자가 어떤 방식을 더 편하게 읽는지 등 작은 디테일까지 팀원들이 일일이 챙겼다.
썰리 서비스가 오픈한 뒤 젊은 세대로부터 상당한 입소문을 탔다. 블록체인, 해외직구 등 젊은 세대가 관심 많은 주제의 콘텐츠 클릭 수가 높게 나오면서 여러 커뮤니티에서 공유됐다. 게다가 썰리팀이 고안한 대화 형식 ‘초단문체’는 정치·사회 등 어려운 주제를 설명할 때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썰리는 출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카카오 1boon 채널에 파트너 페이지가 생기는 등 고공질주를 하면서, 그해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 어워드’에서 '이머징 미디어'상을 받기도 했다. 다음해 1월 다시 편집국 취재기자로 복귀하면서 썰리의 운영을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다. 이후 썰리는 중앙일보의 정책상 이유로 서비스가 정리됐다. 하지만 기획부터 서비스의 시작 그리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텍스트 뉴스의 미래를 엿봤다. 썰리팀이 느낀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텍스트 문법을 파괴한 해결 방안은 앞으로도 유효할 답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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