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저널리즘' 돌아보기
안녕하세요.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박영사) 의 저자 송승환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일 하면서 드는 생각을 종종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데,
요즘은 일과 육아에 치여서 여가 시간에 노트북을 붙잡고 있을 시간이 마땅치가 않네요.
아기 재우다가 같이 잠드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발제나 토론 요청을 받게 돼 마감이 생기면 부랴부랴 평소 생각해뒀던 걸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자라 역시 마감이 있어야 글이 써지는 걸까요.
이번 글은 지난 10월 19일에 공주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의 정기학술대회 세션 중 '저널리즘 현장 돌아보기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제한 것입니다.
이 글을 P교수님이 목요일 저녁에 요청 하셨는데 같은 주 일요일까지 달라고 하시기에 기한이 너무 짧다고 말씀 드렸더니,
'기한을 넉넉하게 드리나 짧게 드리나 대부분 마감에 닥쳐서 써서 퀄리티는 비슷하더라고요'라는 말씀에
하하하 웃고 반박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글빚이 생기면 아이디어를 샤워하다가 생각하고, 자기 전에 생각하고, 지하철에서 생각하고.
짧게 여러 번 숙성시켜서 쓰는 편인데,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룻밤만에 글을 쓰고 다음 날 퇴고해서 보낸 거라 글의 깊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논란 저널리즘'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눠보고자 공유해봅니다.
곧 또 다른 글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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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또 한 명의 동료가 회사를 떠나 기업으로 갔습니다. 작년 말이나 올해 초만 해도 이직 소식이 들리면 사내 분위기가 술렁였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 또 한 명이 떠났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직이 늘어나는 것보다 진짜 언론계의 위험 신호로 보이는 사례는 따로 있습니다. 1~3년차 기자들 중에서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일단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오는 겁니다. 대부분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곧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기자들이었습니다. ‘기자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 실망을 한 것 같아요.’ 그만 두는 이유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연 후배 기자의 말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실망한 부분 중 하나는 이른바 ‘논란 저널리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논란 저널리즘은 ‘세상의 온갖 사소한 갈등에 논란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기사의 형식으로 포장해 뉴스로 배포하는 일’입니다. 이전에 없던 문제도 아니지만 여러 언론사가 갈수록 경쟁적으로 이런 기사를 늘려 나가 현재는 거의 포화 상태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990년부터 현재까지 제목에 ‘논란’을 넣은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1990년에는 538개, 2023년에는 3만757개의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빅카인즈의 검색 대상에 포함되는 전체 기사 수가 1990년에는 52만여 개, 2023년에는 528만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모수가 약 10배로 늘어날 때 논란이 제목에 붙은 기사는 약 57배가 됐습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는 연간 전체 기사 수가 약 500만개, 이 중 제목에 논란이 들어간 기사 수는 약 3만개 정도의 비율이 대동소이 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검색 결과를 살펴보면 제목에 유독 논란을 많이 넣는 언론사와 적게 넣는 언론사를 구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 분류로는 사회와 정치 뉴스가 제목에 논란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그 다음으로 문화 뉴스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기사 건수를 비교하는 것은 숨겨진 맥락을 간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 구성원의 관심이 전보다 파편적이고 갈등이 세분화 돼서 논란이 실제로 늘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23년 6월 발표된 연구 <‘논란’ 키워드로 본 뉴스 의제의 연성화와 정치화>에서는 암담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언론의 상업화, 정파화로 인해 ‘논란이 아닌 것의 논란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제목에 논란이 들어간 기사 중에 법안이나 정책을 담은 기사의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데, 연예인의 발언이나 태도를 문제 삼아 논란이라 이름 붙인 기사의 수는 가파르게 늘었다고 합니다. 문화 뉴스의 제목에 논란이 많이 붙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논란 저널리즘의 확산이 기자들의 힘을 빠지게 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점입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단독 기사, 사회 문제와 정책을 다룬 기획 기사 등 공들인 취재의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전보다 훨씬 적어져 영향력도 감소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문제도 아닙니다.
논란 저널리즘의 이면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언론사들이 논란 기사를 만드는 목적은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더 많은 조회 수를 얻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극대화 하려면 논란 기사를 균형 잡힌 입장보다는 다수의 편에서 작성하는 게 유리합니다. 이 때문에 논란 기사들은 대부분 온라인 여론 중 다수를 찾아 쫓아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의 의견도 들으려는 기사는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다수 의견의 눈치를 보는 언론으로 점차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향성을 보면서 언론이 이제 ‘어젠다 세터’가 아닌 ‘어젠다 팔로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어딘가에 ‘논란이 아닌 논란’이 발생하면 이를 쫓아가 다수의 관점에서 사건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소수를 나락으로 보낸 뒤 또 다른 논란을 찾아 가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 때문입니다.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나면 쫓아오는 ‘그것’과 닮아간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현장에서 나옵니다. 반면 어떤 사안에 더 집중하고,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지 맥락을 설명하는 역할은 갈수록 소홀해 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회의감을 느낀 기자 여럿이 언론계를 떠났고, 언론인이 되겠다고 지원하는 인재의 수도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언론사는 ‘논란이 아닌 논란’ 기사를 만드는 일을 반성도 없이 여전히 가열차게 그리고 더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하는 마지막 시점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모두가 알지만 관행이 돼 버린 이 문제의 심각함에 대해 다시 강조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