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
벗겨진 오른발이 시리다. 양말 발목 고무줄이 늘어남으로 인해 마치 맞지 않은 양말을 신은 듯, 발이 자꾸 양말을 신발 안에 두고 빠져나온다. 빠져나온 오른발이 부끄러울 거 같다. 왼발을 옷을 입고 있는데 오른발은 발가벗었으니까. 마치 겨울철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거와 같다. 쓸쓸한 마음은 덤으로 왔으니. 양말 한 짝이 벗겨지는데 슬리퍼가 무슨 소용일까, 맨발로 슬리퍼를 신으면 슬리퍼 바닥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맨바닥을 걷는 느낌은 아니겠지만 온기 잃은 대리석을 걷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내내 혼자 걷는 기분을 준다. 죤이 양말을 사준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없다. 그래서 버리려고 했던 양말을 다시 꺼내신었다. 이놈들도 처음엔 쨍쨍하게 내 발을 잘 감싸줬는데 계절이 바뀌니 이 녀석들의 시절도 다 갔다 보다. 한시절 잘 살고 수명을 다하는 매미 같은 녀석들. 문득 죤이 인문학을 배워보라고 한 게 생각이 났다. 대학을 다시 다녀도 될까, 여유가 있을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면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려나. 나는 지금도 좋은데, 자유롭게 읽고 쓰는 지금도 좋은데, 그렇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고 성장하려면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더 낫겠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단순히 돈에서만 오는 건 아니길 바란다. 나의 마음의 여유로 감싸줘야 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에게 내 마음의 여유를 다 쓸 때까지 나는 내 마음의 크기를 조금 더 키우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은 조금 더 유보되어도 괜찮다. 그러므로 세세하게 관찰하는 눈을 조금 더 키워보려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했으니 이번에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엄지발가락의 거스러미도 새끼발가락의 갈라지는 발톱도 모두 까끌까끌한 촉감을 가졌지만 잘라내면 부드러워지듯, 관리하면 깨끗한 발을 가질 수 있듯 말이다. 그리고 따뜻한 양말로 감싸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까끌까끌한 마음은 그리 간단하게 다듬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쉽사리 감싸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으니까. 더 노력해야지 한다. 지금 보이는 마음의 거스러미를 다듬어내고 나면 내 인생에도 한편의 소설 같은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면서, 내 마음의 여유가 그들에게 닿아 모두가 단단해지길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