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평원 '아몬드'를 읽고-
"넌 눈치가 너무 없어."
"눈치 좀 봐."
"생각 좀 하고 말해."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거니."
1. 눈치의 시작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가다 보면 내가 주눅이 들기 시작한 대표적인 사건이 하나 생각난다. 가정 시간에 사람의 신체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교과서에 사람은 '겨드랑이에 털이 난다.'라는 글과 그림을 보고 제모에 대해 몰랐던 나는 털이 없는 고모의 겨드랑이를 떠올린 나는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겨드랑이에 털이 안 나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은 다 겨드랑이에 털이 나."
"안 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
"제가 안 나는 사람을 봤는데..."
"그건 무모증이라는 거야."
호기심이 강했던 나는 얼굴 표정을 이상하게 일그러트리는 가정 선생님을 모여 집요하게 질문했다. 나는 공부에 '열정이 있어요.'라는 티를 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난처한 듯하다가 나를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내 질문을 마무리했다.
"알렉스는 사람 몸에 관심이 많구나."
반 전체 아이들이 그때부터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짓궂게 나를 놀리고 배척하기 시작했다.
"야, 너는 사람 몸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섹스도 잘 알겠네. "
"가정 시간에 100점 맞겠다?"
이런 식으로 비꼬는 애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섹스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아니야, 나 공부 하나도 안 했어. 그게 뭔지 관심 없어..."
나는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시험에서 아는 문제도 틀리게 쓰거나 칸을 비워놨었다. 특히 가정 과목에서는.
나는 중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학교에서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손을 들었고, 그 일들을 열심히 실행했다. 하지만 그 생활은 1학년 1학기로 끝이 났다. 적극적이지만 어리숙한 내 행동들에 선생님이 칭찬보다 핀잔을 주었고, 선생님의 몇 마디 말로 아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 내게 박혔다. 내가 처음부터 장난이 심했던 것도, 학교 공부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선생님들의 말이 무서웠다. 친구들은 나를 철없는 어린애라 칭하며 '철 좀 들어, 눈치 좀 봐, 넌 눈치가 너무 없어.'라는 말들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친구 사귀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장난을 치고 친구들이 웃으면 그게 즐거운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다. 그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그래서 친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친구들이 관심 있어 보이는 행동을 '더' 했다. 친구들이 서로 간지럽히는 장난을 하며 웃으면 나도 그 사이에 끼어서 같이 간지럼을 폈다. 그만하라는 친구의 말에 한술 더 떴다. 그 행동들이 친구들에게는 지나친 행동으로 보이고 귀찮게 느껴진 모양이다. 나는 어느 순간 철없고 눈치도 없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된 나는 제대로 된 짝이 없었다. 2명씩 줄을 서야 할 때도 항상 맨 뒤에 가서 섰다. 내가 그들의 공간에 부적응자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커다란 풍선이라면 어딘가 구멍이 나서 바람이 픽픽 새나가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난 움츠린 채 3년의 중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2. 끝난 줄 알았어.
나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고, 공부를 하지 않았으므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집에서 6시 30분에 출발해야 하며,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거리였다. 그 거리보다 힘들었던 건 처음 만나게 될 친구들이었다. 상업고는 문제아들만 온다는 소문도 익히 들었다. 첫 등교 날 나는 그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또다시 혼자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에 밤새 시름시름 앓았다. 다행히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한 친구가 몇 있었다. 그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그중 한 명이 같이 다닐 친구가 없었는지 유난히 나와 잘 붙어 다녔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시내에 나가 놀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잘해줬다. 그렇게 내게도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이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사귀고 난 후 나에게 냉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를 잃기 싫은 마음에 그 친구에게 용기 내 말을 걸었다.
"은혜야,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있으면 말을 해줘. 내가 고칠 수 있는 거면 고칠게."
그 친구는 내 말을 무시하며 비웃음만 남기고 다른 친구와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할 수 없었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거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나는 1등을 했다. 정해진 것만 외웠는데 그게 다 시험문제로 나왔다. 나는 기분이 들떴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뽐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그로 인해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새로운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반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나에게 모르는 문제를 알려달라며 찾아왔고, 내가 별말 하지 않아도 그들의 무리에 끼워줬다. 선생님들은 내가 복도에서 뛰어다녀도 훈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저 아이는 노력하는 아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아이라며 치켜세워줬다. 나는 그때 사회가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이 어떻게 생기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눈칫밥에 절여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더욱더 노력했다. 친구들 일에 물심양면 나섰고, 귀찮고 피곤한 일이 생겨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3학년이 되었고, 성실하고 올바른 아이로 인정받아 1순위로 취업이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얼마 안 남은 학교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다. 고민 끝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취업 조금 더 늦게 하면 안 될까요? 저보다 은영이가 더 취업하고 싶어 하는데...“
"미쳤니? 그렇게 좋은 회사 쉽게 오는 거 아니야. 선생님이 보내줄 때 가."
나는 그 말에 반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취업을 원했던 아이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진 채로,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 19살의 나이에 취업이 되었다. 또다시 나는 눈치 봐야 할 대상이 가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간 거 같았다.
학창 시절 동안 나는 눈치의 굴레 안에서 빙빙 돌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풀어졌던 숨통이 다시 조여왔다. 눈치란 누가 만들어낸 단어일까. 누가 나를 이렇게 작아지게 만들었나. 나는 내가 작아지는지도, 어떤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는지도 모른 채 10대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 어른인 척하며, 모든 걸 다 이해하고 감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정받고 칭찬받으려 무던히 애썼다. 나는 내 몸에 눈치가 배었다고 생각했다. 비굴한 눈치가.
나는 사무실 안에서 휴대폰을 쓰거나 개인행동을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순종적이고 예쁘고 보여야 한다는 선생님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유롭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고, 간식을 먹는 일도,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보면서 해야 했다.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매일 절망했다. 나는 그저 19살 고등학생이었다.
3. 어른은 아이의 거울?
뒤돌아보면 나의 눈치의 시작은 나를 무시했던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여러 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를 짓밟았다. 그때 가정 선생님이 내 질문에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다른 선생님이 활발함을 산만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공부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려준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나는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권리도 없는 무능력한 그들은 아이들을 본인들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찍어누르기 바쁘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아직도 여기저기 눈치를 보기 바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깨달았어도 체화된 눈치를 제대로 털어낼 수 없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나는 제대로 된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겪었던 피해의 거울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더라도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라 말해주고 싶다. 과거의 나에게도. No 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