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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Aug 20. 2021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Go

'젊음'과 '늙음'그 교차점에서 만난 아름 l 송블리의 독서아삭

대수와 미라의 아이 아름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두근두근 내 인생. 두근두근 내 인생은 아름이로 인해 대수와 미라가 엄마, 아빠의 모습을 배우고 어른이 돼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사회적으로 부모가 될 자격을 주지 않는 고등학생 신분에 아름이를 갖게 된 대수와 미라, 그들의 첫 만남은 아름다웠지만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를 연 이유 때문에서였을까? 아름이는 아빠, 엄마보다도 더 늙은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는 병, 조로병에 걸려서 태어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보다 더 많은 나이를 가진 듯 보이는 17세 아름이, 늙어버린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내면은 대수와 미라의 그 찬란했던 여름 날 만큼이나 더욱 순수하고 티 없이 맑았다. 장 씨 아저씨와의 우정을 쌓는 모습, 17살의 생일 선물인 노트북을 통해 서하와 편지를 주고받는 그의 모습, 엄마와 아빠에게 누구보다도 더 큰 슬픔이자 기쁨인 자식으로서의 아름이의 모습에서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시간과 나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 속에서 매일을 살고 있는 우리네의 삶 속에서 아름이가 가지고 있는 ‘조로병’의 의미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노인의 모습이지만 내면은 17살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이.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라는 이 책의 한 구절처럼, 보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이에게 인생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를 생각했을 때, 보통의 축복이 얼마나 큰 지 실감하게 된다. 신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평범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지극하게 평범한 어떤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해야겠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외에도 ‘젊음’과 ‘늙음’, 그러니까 외모와 내면의 일치에 차별을 둔 영화가 2009년 한국을 뜨겁게 달궜었다. 그 영화는 바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다. 영화의 배경은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스이고, 영화의 내러티브는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아이로 태어나서 점차 빠르게 늙어가는 병을 가진 아름이와는 다르게, 벤자민은 태어나자마자 노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부모에게 버림을 당한다. 그런 벤자민이 새로운 부모님을 만나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 노인의 모습으로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성장과정, 성년이 되어 일과 사랑에 대한 첫 깨달음을 얻는 과정, 그리고 한 남자로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갖게 되는 과정, 이후에 더욱 어려지는 모습으로 가족을 지킬 수 없는 그의 숙명 속에서 가족과의 이별을 하게 되는 가슴 시린 과정들이 마치 아름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일생이 제한적이었던 벤자민처럼, 아름이 역시 늙어버린 17세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고, 친구들을 만들 수도 없던 아름이의 운명에서 지독하게 고독한 현대인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서하의 편지는 참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렇게 지독하게 고독을 감싸고 태어난 아이 아름이에게 처음으로 우정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아이는 아름이가 보통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듯, 어떤 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였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아름이 에게도 자신의 일상을 나누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오늘의 일과를 전할 수 있는 친구의 존재가 생겼을 것을 생각해보라. 서하라는 친구의 존재가 아름이에게 얼마나 큰 두근거림을 선사했을지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나 역시도 설레는 느낌이다.


그 이후에 서하라는 아이가 허구 속에 존재하는 아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아름이가 얼마나 큰 허무함과 실망을 가졌을지 생각해보면 그 허무함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친구가 생겼을 때에는 참 순수하고 마냥 천진난만했던 아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작가 지망생의 불장난 같은 농락이 참으로 밉게만 느껴졌다. 책을 읽는 내내 서하와 편지를 주고받는 아름이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먹먹했다. 아름이의 마지막 길에서 대수의 아들에 대한 무한정한 사랑, 우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상처 받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느낄 수 있다. 아름이의 마지막 길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대수의 모습에서, 이제는 철부지 고등학생을 옷을 확실하게 벗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부모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자식의 정해져 있는 죽음 앞에서, 그리고 일평생을 살면서 자신들보다 더욱 늙어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경은 어떨까? 그들의 귀한 자녀, 아름이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선물은 바로 대수와 미라의 사랑 이야기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 계곡 속에서, 미라를 처음 본 대수의 쿵쾅거리는 느낌에서부터 파릇파릇한 대수의 욕망을 어루만지는 자연의 풍경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아름이를 끝까지 지켜낸 미라의 사랑까지도 말이다. 어리지만 결코 어리지 않은, 빠르지만 결코 덜 성숙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세상의 지혜를 가진 노인의 모습을 한 사랑스럽고 티 없이 맑은 ‘아름이’로 대변된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고 간 아름이 자체가 진정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참 기쁘다는 대수의 말을 넘어서서, 세상에서 누군가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마력을 지녔던 아이, 아름이는 마지막까지도 부모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간 것이다. 평범 속에서 벗어난 그의 존재가 죽음 앞에서는 제 나이를 찾은 듯, 그렇게 아름이는 이 세상을 떠나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아름이에게 조로병을 안겨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 제일 먼저 떠올랐고, 그 해답 역시 제일 먼저 느낄 수가 있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타인을 향해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책임 있는 선택이 때로는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점과 부모의 헌신으로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들이 말이다. 책을 통해서 하나하나의 의미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나의 내면 속에서도 큰 감동의 울림이 전해졌다. 이런 의미있는 작품을 쓴 작가님의 내면적 따스함이 느껴졌다.


 끝으로, 아름다웠던 아름이의 생애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며, 보통의 일상 속에서 나는 너무 많은 투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같이 자존감과 자존심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한없이 위축돼 있는 내 모습을 볼 때 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전해주는 ‘젊음’과 ‘늙음’의 교차 점 속에서 성숙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아름이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생기 없어진 나의 젊음에 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지혜와 성숙을 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되었을 때 후회 없이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며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며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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