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보내고 오는 길, 저 달은 보름달 아니던가.>
다사다난한 2024년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나의 2024년에 가장 슬픈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바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내는 일들이 아닌가 싶다. 항상 기다려주실 줄 알았던, 누군가의 존재가 이제 더 이상 현생에서는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체감하는 것은, 아무리 습득된 경험이라고 해도 마주할 때마다 그 아픔의 생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으니까 말이다. 최근, 나는 오랜 곁을 지켜주신 나무 같았던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하였고 생전에 살아계신 할머니와의 몇 안지만 크고도 아릿한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오랜 시간 헛헛하고 슬픈 마음을 감출 기색 없이 그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허망함과 슬픈 감정에 떠밀려 잠시 인생 시계를 멈추어 내가 살아왔던 날들에 대한 회고의 시간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 이 시간,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닮아 서로의 온정을 나누는 가족들의 온기가 더해지면서 그 슬픔의 크기가 작아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살아 생전의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무섭게 느껴지는 할아버지 만큼이나 할머니의 성격은 그리 다정다감하신 성격은 아니었으니, 어린 시절에 할머니는 아빠, 엄마 만큼은 다가가기엔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할머니의 성격은 내가 손녀로서 다가가기엔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도시에 살 때에도 이사를 갈 때마다도 한번씩 집에 방문하시어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보고 가시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나는 가끔 반갑기도 했고, 또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이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긴장되기도 하였다. 소도 키우도 밭도 가꾸며 시골 일 하시는 할머니가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도시인 우리 동네로 오시면 괜스레 마음이 쫄깃쫄깃해지기도 했고, 할머니가 엄마랑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우리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편안하신지에 대한 괜한 걱정의 마음이 들면서 그렇게 한 가족이자 어른이었던 할머니를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시간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같은 공간 속에서 할머니라는 가족의 온정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에겐 식구들이 많아서 할머니는 다른 동네의 가족들의 집으로 냉큼 이동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마음을 열고, 더 다가가려는 시간 즈음에는 항상 이 타이밍이 맞지 않아 할머니의 아른아른 거리는 모습만 먼 발자취에서 보고 또 다음 만남을 기대해야 했다. 그렇기에 때로는 친구들네의 어느 할머니의 모습처럼, 조금은 다정다감하거나 손녀들과 살가운 할머니의 모습을 조금 바랄 때에도 있었지만,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모습대로 그렇게 늘 함께 있어주신 발자국들이 지금에 생각해보면 참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점들이 괜스레 부러워지지 않았던 적 있는가? 나는 유독 가족들의 그런 따스한 정들을 그리워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나도 10대 시절에는 조금 조용한 성격이었고 할머니에게 선뜻 다가서는 그런 활발함이 있지는 않았던 듯 하여 약간은 조용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가 이제는 조금 친해지는 시간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20대 때에는 할머니는 나에게 둘 도 없는 응원자이자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시기도 했으니 할머니의 사랑과 깊이는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어떤 중요한 가족 모임이나 잔치에 참석하셔서 다시 시골에 돌아가시면, "나는 둘째 고거(븐니 작가를 말한다.)가 그렇게 예쁘다고"엄마에게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으니, 나는 할머니가 나를 콕 찝어서 예쁘다고 말씀해주시면 그 날은 기분이 좋아 방구석에서 몰래 환희의 쾌재를 부르기도 했던 마음이었다. 더불어 할머니는 그 시골에 살면서 나를 잘 모를것만 같기도 했는데, 사실은 나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 우리 할머니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20대의 꿈이 무엇인지도 아시는, 나를 마음속으로 많이 사랑해주시는 아주 소중한 할머니였다.
너무 사랑했던 것들이 많았기에, 기다려주시는 할머니, 엄마, 아빠에게 어쩌면 남아있는 효도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마음이 들기도 하여서 남은 시간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것들에 대한 방향을 두어야 하는 지를 지금의 시간을 통해서 생각해보게 되고 있다. 너무너무 오랫동안 사랑한 것들이 있어서 기다려주시는 가족들의 마음에 오랜 인내의 고통을 느끼게 한 건 아닌지, 아니면 어른들이 바라는 그 모습을 유예하면서 내 삶은 내가 멋있게 살 수 있다고 괜한 오기를 부렸던 것은 아닌지, 조금은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엘레베이터는 잘 타면서 에스컬레이터는 타기에 무섭다고 하시는 소녀같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라 한참을 기차역에 서서 우리가 있던 그 시간을 잠깐이나마 마음 속으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울음을 감추지 못해, 마스카라로 얼룩덜룩 바둑이가 되어버린 한 손녀의 저녁길은, 그렇게 밝은 보름달이 따라와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니, 이것이 바로 할머니가 나에게 마지막까지 주시는 선물은 아닌가를 생각해보며 밝게 비춰주는 보름달에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다시 또각또각 인생을 걸어왔다. 이제 다시 씩씩해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