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같이 살게된 이유
할머니한테 월세 50만 원을 주는 날이다. 내 나이 베스킨라빈스(31세), 나는 지금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다.
할머니랑 같이 산 지 1달밖에 안 됐는데 100년은 같이 산거 같다. 지금도 새어들어오는 TV소리를 막기위한 방음커튼과 오래된 나무 문 사이를 고무패킹으로 둘러싸고, 또 한 겹의 암막커튼으로 무장한 내 방으로 할머니의 귀에 맞춰진 TV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껴도 상황은 똑같다.
오감이 예민한 나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환경이다. 한 달 동안 다행히 타협을 어느정도 해서 10시 이후인 자는 시간에는 TV소리를 줄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나이 차이는 50살, 할머니에게 잘 들리는 음역대와 나에게 적당한 음역대는 너무나도 차이가 크다...
할머니랑 같이 살아야겠다 생각했던 계기가 있었다. 지금 같이 살고 계신 분은 외할머니고, 친할머니는 시골에 계시는데, 치매에 걸리셨다. 그래서 아빠와 고모들, 작은아빠들은 매주 돌아가면서 친할머니를 돌보러가신다. 그 모습이 참 대단하면서도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물론 외할머니도 엄마를 포함해서 슬하에 자녀가 넷이나 되신다. 아마 내가 조부모님에게서 자라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거 같다. 성격과 애착은 3세 이전에 형성된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셔서 조부모님을 부모님처럼 생각하는 거 같다. 실제로 할머니가 나를 엎고 다니실 때면 막내딸이냐는 물음을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18살에 결혼을 하신 할머니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물음일 것이다.
내가 할머니와 살기로 결심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2024년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은 사업자를 내서 사업이라고 하는 거지 딱히 내세울 건 없다. 20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언젠가 내 사업을 꼭 할 거야'는 생각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시작했었다. 신기하게도 30살 내 생일이 있던 9월에 많은 일들이 겹치면서 나의 회사생활이 끝이 났고, 기회다 싶어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자세하게 하겠다.
사업 초반에는 현금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던데 당시 대부분의 현금이 전세로 살고있던 집에 묶여있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혼자 계신 할머니', '현금이 필요한 나'가 겹쳐지면서 '같이 살면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동거는 시작됐다. 물론 할머니한테도 2번이나 여쭤보고 좋다는 대답을 듣고나서 합가를 시작했다. 삼촌들은 농담으로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성인이 됐기 때문에 할머니랑 부딪히는 게 있을 거라고 우려를 했었는데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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