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할머니와 손녀의 동거

가족은 따로 살아야 사이가 좋은가?

by 은빛



2025년 4월 27일

결국 할머니와 분가를 결심했다. 3개월 동안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경제적인 여유보다 심리적인 여유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1편에서 얘기했듯이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 이유 중에 전세로 묶여있는 현금을 빼기 위한 것도 있었다.


[ 1편 먼저보기 : https://brunch.co.kr/@songyeseul93/24 ]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을 때는 수입에 대한 불안도도 낮아지고 할머니집에 들어오면서 필요한 것들도 사고, 도배랑 조명도 새로 갈고, 최소 1년은 있겠지 하면서 이것저것에 지출을 했다.


하지만 나는 돈보다 환경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알게 되었다. TV소리로 잠을 깊게 못 자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에 염증반응과 잔잔바리 병들이 계속 생겨났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 지금의 할머니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오감이 예민한 나에게 소리 외에도 많은 고통 포인트들이 있었다.



노인냄새

처음에는 음식냄새라고 생각했는데, 공기청정기를 켜고, 방향제와 숯을 이곳저곳 설치해도 알 수 없는 냄새가 계속 났다. 그래서 찾아보니 할머니 냄새였다. 한 편으론 슬프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였기에 견디기 어려웠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할머니가 자주 씻으시는 거라는데, 할머니한테 이 얘기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상처받으실 거 같아서...


위생관념

할머니와의 나이차이 50년. 어릴 적 할머니는 무척이나 깔끔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셨는데, 지금의 할머니는 많이 털털해지셨다. 흔히들 '깔끔 떤다'라고 말하는 사람에 속하는 나는 그것 또한 너무나 고통이었다. 김치냉장고에 있으면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고기 요리를 해주시면 특유의 오래된 고기 향이 나서 먹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참고 먹었지만 언제나 참는 건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지금은 3끼를 모두 밖에서 사 먹는 중이다.


부담감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일을 하다가 쉬려고 거실로 나올 때면 할머니는 그때부터 사람과의 대화를 시작하신다. TV에서 본 것들, 과거에 할아버지에서 서운했던 것들, 자식들에게 서운했던 것들 등등 노인정에 안 가시는 할머니의 평소 말상대는 나뿐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부정적인 얘기라서 듣다 보면 내 기분도 나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슬프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다가오실 때면 속으로 '또 어떤 부정적인 얘기를 하려고...'가 바로 떠오른다. 그런 할머니가 차라리 전문 상담사를 만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방적인 사랑

나는 이제 성인이다. 어릴 때는 어떤 형태이든 주는 사랑을 그대로 받았지만, 이제는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형태가 있다. 이를테면 음식을 많이 해주는 것보단, 휴식시간을 존중해 주는 것. 걱정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단, 너라면 할 수 있다 용기를 주는 것 등 성인이 된 은빛이는 '존중'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하지만 할머니 눈에는 내가 아직 어린아이로 보이시는 모양이다.


처음엔 '나는 이런 방식으로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도 몇 번 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이제는 내가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거 같다. 안타깝지만 나의 자존과 경계를 지키기 위해선 독립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러모로 경제적인 여건과 할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내가 더 걱정이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덕분에 2번째 엄마인 할머니와도 정서적인 독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할머니와 사이가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따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인이 되면 '가족은 따로 사는 게 더 사이가 좋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걱정되는 건, 내가 할머니의 일상에서 빠지면 할머니가 일상에서 소통할 사람이 없어지는 거다. 이사 가기 전에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할머니가 일상에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혹시 성인이 돼서 할머니와 동거를 생각하고 있는 손녀 혹은 손자라면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것과 할머니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제는 완전한 정서적 독립을 하게 된 것 같아, 어쩐지 기대가 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다.


- 2025년 온전한 성인으로서 독립완료 -



다음 에피소드

[ 건강한 이별 ]


1편 돌아보기

[ 머니와 같이 살게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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