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건강한 이별

"용기 내서 마침표 찍어줘서 고마워"

by 은빛



2025.07.24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아주 찝찝하게


약 8개월 전, 2년 동안 지독하게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을 했었다. 당시에는 우리의 다름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불안해하고, 서로를 탓했던거 같다. 우리는 결혼까지 얘기했지만, 그러기엔 타인을 '존중' 할 줄 몰랐다.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우린 끝이 났다.


그 시기에 가정에서도 약간의 힘든 일이 생겼었고,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했었다.




이별의 마지막이 '차단'이었어서, 우리가 진짜 끝난 건지 사실 실감이 잘 안 났다. 다시 만날 것만 같고, 마음속 '연인의 방'에 여전히 그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혼자만의 세상을 걸어갔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나고, 혼자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을 때쯤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에 오토바이를 탄 한 남자가 나에게 번호를 물어봤다. 그는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오토바이를 타서 그런 건지 사람이 참 자유로워 보였다.


그의 자유로운 모습에 궁금함을 느끼고 번호를 줬다. 그날부터 그 남자의 적극적인 대시가 시작됐고,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쩐지 첫 만남에는 대화도 잘 통했다.


그런데 그가 적극적으로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묻어놨던 전남자친구와의 미해결된 감정이 수면 위로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남자친구는 꿈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게 연락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해졌고,

새로운 남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올수록 이 감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렇게 부담을 느끼다가 내 기준에 맞지 않는 그의 말과 행동들을 보고 새로운 남자를 완전히 밀어냈다. 더이상 아픈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잠깐의 단절의 시간을 가졌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개팅을 받으면서 그 남자 생각이 계속 나더라

다행히 마음이 통한건지 다시 연락이 닿았고, 우린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내 마음속 연인의 방이 비워지지 않은 채로




나는 여전히 전남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남자친구가 연인의 방에 들어온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미해결된 감정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질 때 쯔음, 나의 가치관을 건드는 새로운 남자친구의 말과 행동이 전보다 더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전남자친구에게 관계의 마침표를 위한 카톡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 어떻게 메시지를 보낼까 수십 번 고치면서 언제 보내는 게 좋을까,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가 그의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토요일 오전, 카톡을 보냈다.




은빛 :

그때는 우리가 다른 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몰랐던 거 같아.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했어, 고마워.


내가 그때는 일도, 가족도, 연애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우리 서로에게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길 바래.

주말 잘 보내.




그는 메시지를 바로 읽었고,

나는 이미 연애를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제발 너도 끝내줘'라며 흔들릴 거 같은 마음을 붙잡고 계속 울었다.




X :

나도 덕분에 많이 성장했어,

그리고 용기 내서 마침표 찍어줘서 고마워.




그도 마침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드디어 내 마음속 '연인의 방'에서 그가 나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상대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기준을 상대에게 주입하려고 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방식대로 사랑을 주고, 받아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 거 같다.

가끔은 잠시 떨어져 나와 상대,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순간도 필요한 거 같다.


세상에 정답은 없고, 모두가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내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할 필요도, 내가 옳다며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거 같다.


나의 용기를 인정해주고 함께 마침표를 찍어준 전남자친구가 너무 고맙다. 그와 내가 둘 다 편안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덕분에 처음으로

건강한 이별을 경험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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