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애착유형의 변화

가까워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가까워지고 싶은 회피형 애착

by 은빛



2025.07.31

결국 새로운 남자와 이별을 결심했다.


[ 새로운 남자가 누군지 먼저 알아보기 : https://brunch.co.kr/@songyeseul93/27 ]


그동안 묻어놨던 전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올라왔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거부반응.

나는 그에게 존중을 얘기하면서, 나는 그를 존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내 기준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확 식어버렸고, 의식적으로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면 다시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게가 달랐다.

아마도 그는 나를 무겁게 느꼈을 것이고,

나는 그가 가볍게 느껴졌다.


결국 맞지 않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관계를 정리했다.




애착유형의 변화

2021년, 나를 알고 싶어 시작한 심리상담에서 애착유형 검사를 했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안정형 애착유형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한 이유는 난 꽤나 예민한 편이어서 불안형이 나올 거라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예민한 것과 애착유형은 상관이 없나 보다. 알아보니 안정형 HSP 더라.


*HSP : 심리학자 엘레인 아론(Elaine N. Aron)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Highly Sensitive Person(매우 민감한 사람)의 약자로 전체 인구의 약 15~20%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은 회피형 애착유형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내가 왜 주변 친구들을 서서히 정리하면서 혼자 고립을 하려고 했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되고 있었는데, 애착유형이 바뀌어있었다니까 한 번에 이해가 됐다.


너무 진하게 사랑을 했던 걸까.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우린 인연일까?

2018년 여름, 나의 생일 날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번호를 물어봤다. 나이는 나보다 1살 어렸지만 약간 날티(?)나는 느낌이 분위기는 나보다 오빠같았다.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정말 친한 동생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곧 유학늘 가는데 같이 갈거냐는 질문에 물음표로 답을 했고 그는 떠났다. 그렇게 인연이 끝났구나 생각했었다.


2022년,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연히 같은 페스티벌에 갔었고, 내가 올린 사진을 보고 반가워서 연락을 했단다. 예전엔 그가 마른 체형이었어서 인지 그냥 어린 남자애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서인지 체형도 많이 탄탄하게 바뀌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 많이 남자다워져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던 거 같은데, 다시 만났어도 뭔가 대화는 잘 통했다. 열심히 사는 게 느껴져서 멋있어 보였고, 더위도 많이 타면서 고기 먹고 싶다는 말에 고깃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워주는 모습도 고마웠다. 그렇게 5년 만에 만난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당시 회사가 끝나면 집에 가서 코딩 공부를 하고 10시쯤 자는 게 나의 일상 루틴이었다. 내 루틴을 파악한 이 남자는 매일 밤 10시에 전화를 했었다. '오늘은 안 하겠지?' 하는 날도 빠지지 않고 매일 했다. 그 모습이 '나를 많이 좋아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에게 점점 빠지고 있었다.


데이트도 몇 번 하고, 술 마시면서 서로의 마음도 어느 정도 확인했었는데, 어쩐지 사귀자는 말을 안 하더라. 관계의 시작은 답답함을 느끼던 나의 말이었다. 아마 내가 그때 "우리 무슨 사이야?"라는 말을 안 했다면 사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어찌 되었든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느껴졌다.




회피형 애착의 시작

그렇게 열정적으로 대시하던 남자가 갑자기 거리를 두는 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편지를 써주기 시작했다. 모든 선물과 편지의 마지막 멘트는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로 마무리했다.


한동안 그렇게 내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니 관계에 안정이 조금씩 찾아지는 거 같았다. 그럼에도 은연중에 툭툭 던지는 그의 말속에는 내편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서로 의견이 다를 때면 내가 '생각이 많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만 상처받고 싶다, 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싫기도 했지만, 더 힘들었던 건 그는 언제나 헤어지자는 말에 '내가 성공해서 와야 하나?'라는 말을 하며 자기가 성공하지 못해서 내가 헤어지자고 하는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목적지향적인 부분은 정말 잘 맞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경제관념 등 중요한 가치관에서 많이 달랐다. 갈등 후에 나는 다시 같은 일로 싸우고 싶지 않아 ‘왜 싸웠고,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고, 그는 ‘좋게 생각하자’는 입장이었다.


동거 얘기가 나올 때 쯔음, 같이 집을 알아보러 다니면서도 가치관의 차이가 느껴졌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둘이 작게 시작해도 괜찮다는 나와 부모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의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헤어지지도 못했다. 그 때는 나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던 거 같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한 지 1년, 나는 상담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치료를 위해서.


그는 상담을 받는 나에게 괜찮냐는 말대신 '자기(글쓴이)는 이렇게 강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해줬었다. 그때 나는 괜찮냐는 위로가 필요했는데, 그말을 들었을 때는 이상한 압박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 말을 남기고 그는 해외로 출장을 나갔다. 나는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고, 해외라서 그런지 연락하기가 어려웠던 우리는 잠시 이별을 했었다.




회복의 시도

치료를 위해서 기존에 다니던 상담센터를 갔다. 상담 선생님은 얼굴 표정부터 바뀌었다며 더 심해지면 우울증 걸릴 거 같으니 초기에 약을 처방받아서 먹으라고 권해주셨다. 덕분에 초기에 잡아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애착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그 뒤로 1년 사이에 나는 오랫동안 알던 가장 가까운 친구 3명을 정리했다.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친구들의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고, 내 곁에 두면 안 될 거 같았다. 전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지켜보며 자기한테도 그렇게 할까 불안해했었다.


전남자친구의 정확한 애착유형은 모르지만, 그는 본인이 회피형인거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둘 다 회피형이 되니 우리 관계에서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한 명이 다가오면 한 명은 멀어지고, 한 명이 멀어지면 한 명은 다시 다가가고, 악순환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불안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고, 언제나처럼 나는 상담을 떠올렸다.


이번엔 혼자가 아닌 '같이'


그에게 같이 상담을 받자고 권유를 했다. 그 말 때문인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담받자고 한 다음날, 남자친구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같이 안정을 찾고 싶었던 거였는데, 우리는 가치관도 생각도 많이 달랐던 거 같다. 배신감도 느껴지고, 과거 헤어지자 말했던 고통받던 내가 떠올라서, 헤어지자는 그의 말을 존중해 줬다.


아마도 그는 내가 잡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았다. 헤어지자는 그의 말에, "알겠어"라고 대답하니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보였고, 당황한 손과 천천히 걷자는 말, 배신감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헤어진 날부터 하루 종일 울었다. 그리고 무너질 것 같은 나를 돌봐줬다. 꽃도 사고, 일부러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었다. 일기도 쓰고, 명상하다가 오열하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그에게 전화가 왔다. 헤어짐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슬프지만 눈물이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참 마음이 아팠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

나를 잡는 건지, 잡아달라는 건지, 관계를 끝내고 싶은 건지, 이어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 또다시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느껴져 스스로를 지키고 싶어 선택한 방법은 차단이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의 모든 흔적을 내 인생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서 엄마의 우울증 또한 심해져 가정에도 안 좋은 일이 생겼었다.


그땐, 진짜 우울증이 걸렸다.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도 점점 많아졌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던 내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우니 정말 고통스러웠다.


1년 사이에 정리했던 오래된 3명의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 주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위로해 주던 친구들도 없었다. 결혼해서 육아 중인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하기엔 그들의 삶이 더 힘들어 보여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혼자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다행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나를 되찾아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매일 산책은 꼭 나갔던 거 같다. 사실 그때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너무 고통스러워서 뇌가 기억을 지웠나보다.




끊기지 않는 그리움

회피형 애착유형 때문일까? 그렇게 2025년 오토바이를 타고 나에게 먼저 다가왔던 새로운 남자와 헤어지고 전남자친구를 잡았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서 나의 행동들이 과거 그의 행동과 겹쳐지는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 이해가 됐다.


과거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말과 행동들이 이해가 돼서 인지, 연애 초반에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라는 말에 책임감을 느껴서 인지, 헤어지자는 말을 자주 했던 나를 돌아보며, 나도 한 번쯤은 그를 잡아야 겠다 는 생각도 들었고, 그를 잡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너를 잡아도 될까?

후회할 거 같아서 고민하다가 보내.




하지만 그는 잡히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그가 잡히지 않는 게 다행인 거 같다. 나는 여전히 회피형 애착유형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같은 연애를 할 확률이 높으니까. 다시 안정형으로 돌아가기 위해 감정을 마주하고 말이든 글이든 어떻게든 풀어가고 있다. 상담도 다시 받고,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으려고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나가고 있다.


회피형이 되어보니, 우리의 연애가 왜 고통스러웠는지 이해되면서도 그의 마음을 몰라줬던 거 같아 미안함도 느껴진다.




진짜 공감이란

배우들은 역할을 위해 직접 체험을 해본다고 한다. 작가도 글을 쓰기 위해 직접 그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고 한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으니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심리학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지만, 추가된 이상형은 '감정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은빛이 지금은 무슨 감정이야?"

"은빛이 오늘은 어떤 하루였어?"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다.

언제나 누굴 만나도, 나를 먼저 돌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사랑해.

그동안 내 마음 먼저 돌봐주지 못해 미안해. 앞으로는 내 마음 먼저 돌볼게, 내가 나를 돌보는 방법을 못 배워서 그랬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첫 번째로 사랑해.

- 은빛이가 은빛이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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