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했던 '불안형 애착'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정서적 유대감
애착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유아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애착이 형성되는 과정은 인간발달심리에서 존 볼비(John Bowlby)와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애착이론으로 많이 설명된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울음, 응시, 미소 짓기를 보이며 상호작용을 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큰 불안 없이 반응한다. 여기서 주 양육자가 꾸준하게 반응을 해주면 점차 '안정감'이라는 씨앗이 생긴다.
이제 주 양육자와 낯선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양육자에게 더 많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 반응한다. 양육자가 먹여주고, 안아주고, 반응해 주면 아이는 '이 사람이 나를 지켜준다'는 기본적인 신뢰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분리불안은 없고, 양육자와 떨어지더라도 크게 불안해하진 않는다.
드디어 애착이 형성되는 단계에 접어든다. 아기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더 강한 애착을 보이고, 떨어지면 분리불안을 느낀다.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과 거부감을 보인다. 이 시기에 주 양육자가 아기의 요구에 일관성 있고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아기에게는 세상을 안전기지(Secure Base)로 인식하고 세상을 탐색하는 행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주 양육자가 일관성 없이 반응하거나, 아기의 울음이나 신호에 무관심, 거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아기는 세상을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이로 인해 불안 애착이나 회피 애착이 형성될 수 있다. 낯선 환경에서 불안이 높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에도 소극적이게 되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주 양육자가 어떤 때는 다정하게 잘 돌봐주지만, 어떤 때는 무시하거나 짜증을 내는 예측할 수 없는 태도가 반복될 때, 아이는 '내가 언제 사랑받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형성된다. 불안한 아이는 끊임없이 주 양육자에게 울고 매달리며 관심을 달라는 신호를 보내게 되고 과도하게 애착 대상에게 집착하고, 떨어지면 극도로 불안해한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는 쉽게 버려질 수 있다', '나를 떠날지도 몰라, 그래서 계속 확인해야 해'가 자리 잡히게 된다.(내면화) 이 경험이 쌓이면 성인이 돼서도 연애 관계에서 확인, 집착, 버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게 된다.
또는 주 양육자가 과잉보호하는 경우도 불안정 애착이 형성될 수 있다.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거나 도전할 때 주 양육자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통제하면서 "너는 아직 몰라", "내가 해줄게"라는 말로 아이의 판단력을 무시하게 되면 아이는 '내가 혼자 하면 안 돼, 양육자가 없으면 위험하다'가 자리 잡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타인의 관심과 보호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며, 자신은 무능력하다는 메시지를 내면화하게 된다. 주 양육자에게 계속 의존하게 되고, 분리불안 또한 심해진다. 성인이 돼서도 '혼자서는 못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의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또 다른 경우는 주 양육자가 자신의 외로움, 불안, 분노 등을 아이에게 털어놓는 경우다. 주 양육자의 정서적 필요를 아이가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네가 없으면 엄마(혹은 아빠/주 양육자를 말함)는 너무 힘들어", "네가 울면 엄마도 슬퍼"와 같은 말은 아이가 양육의 감정 조절자 역할을 하게 만든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양육자의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고, 자신의 욕구보다 양육자의 감정적 필요를 우선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양육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게 된다. 성인이 돼서도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분을 맞춰 주려 애쓰는 행동 패턴으로 나타나게 된다. '내가 잘해야 사랑받는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불안해하고 집착하게 된다.
아이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만 칭찬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불안정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아이가 착한 행동을 할 때만 애정을 표현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무시하거나 벌을 준다면, 아이의 내면에는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어렵다.', '이것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가 자리 잡힌다. 아이는 사랑을 얻기 위해 양육자가 원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항상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게 된다. 성인이 돼서도 타인에게 집착하거나, 애정에 대해 불신하고, 분리불안을 겪으며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크게 확대해석하게 되어 죄책감, 수치심, 불안감을 자주 느껴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쉽게 생길 수 있다.
연락이나 반응이 늦으면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에 불안이 커지고, 자주 애정 표현과 관심을 요구하게 된다. 상대방과 떨어져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과 외로움이 심해지고, 상대의 작은 행동(다른 사람의 SNS 게시물에 '좋아요' 누르기) 하나에도 과하게 해석하거나 부정적으로 해석('그 행동(혹은 말)은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야.')하게 된다. 내면에는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가 자리 잡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밀해지는 것을 보면 강한 질투와 두려움을 느낀다.
연인과 갈등 상황에서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 화를 내거나 비난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문제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상대의 애정을 시험하기 위해 이별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연락을 늦추거나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시위성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관계에 불신을 키우고 오해를 불러일으켜 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게 된다.
불안형 애착은 누구보다 사랑을 깊이 원하지만,
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사랑이 어려울 뿐이다.
이제부터 내가 나를 양육하면 된다.
과거를 공부하며 미래를 바꾸면 된다.
내가 왜 집착하거나 불안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반복해서 생기는지 기록해 보자. '연락이 늦을 때마다 불안해진다. 혹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같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보자. 이는 불안이 실제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고 타고 거슬러 올라가 과거 양육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나는 어떤 행동을 했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었는지도 솔직하게 적어보자.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나를 알아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그 바뀐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대화하며 감정일기를 쓰는 방법도 좋다. 어린 시절 나를 성인이 된 내가 받고 싶었던 양육방식으로 돌봐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다. 나와 건강한 관계를 쌓으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정서적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불안형은 타인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나를 먼저 돌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투나 표정에 신경 쓰기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먼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자.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이고,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외부에 확인받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자.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같은 긍정적인 문장을 매일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물론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내면이 채워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것이다.
혼자 있어도 안전하다는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아 혼자 시작해 보자. "이거 어때 저거 어때" 물어보기보단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도전하면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이 조금씩 쌓일 것이다.
불안이 올라와 계속 연락하고 싶거나, 연락을 아예 안 하고 싶어질 때,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자. "네가 연락이 없을 때 나는 불안해져" 마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올라올 때, 내가 어떤 것을 힘들어하는지 먼저 파악하고 상대에게 '나는 이런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라고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면 나도 나를 이해하고, 상대도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측가능하고 일관된 행동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긍정적인 경험을 쌓다 보면 불안을 느낄 상황이 줄어들고, '세상은 안전하다',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는 신념이 내면화하게 되면서 '나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된다.
수학을 배우러 수학학원에 가듯,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의 감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혼자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심리 상담사와 함께 나를 괴롭히는 감정의 근원을 파악하고, 다루는 방법을 더 빠르게 배울 수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상담센터보다는 감정학원으로 단어를 바꾸면 사람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들이 쌓여 과거 부족했던 사랑을 내가 스스로 채워 '나는 존재자체로 소중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기면서 더 이상 불안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태어나서부터 내가 인식하기 전까지 만들어진 애착을 바꾸는 건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100살도 넘게 살게 된다. 지금 내가 인식하고 바꾸면 미래의 나는 지금 느끼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과거가 어쨌었든,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도, 차근차근 내가 원했던 양육 방식으로 나를 돌보기 시작한다면 미래의 나는 내가 원하는 안정적인 형태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가치 있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저 사랑스러운 네가 더 이상 괴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편 이어보기
[ 안정적이고 깊은 연결이 필요했던 '회피형 애착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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