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점, 돌봄의 씨앗
은빛이가 7살이 될 무렵, 2번째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막내 동생이 태어남과 동시에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조부모님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은빛이네는 대중교통으로 약 2시간 거리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심지어 완전 반대편으로요!
은빛이에게 조부모님은 부모님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사와 동시에 은빛이와 남동생에게는 각자의 방이 생겼고, 심지어 은빛이 방은 가장 큰 방이었기 때문에 은빛이는 행복했어요.
그리고 할머니께서 2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하시며,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3남매를 돌봐주시기로 해서 은빛이는 안심할 수 있었어요.
애착 불안의 잔존 가능성 : 은빛이의 1차적인 보호자는 조부모님입니다. 물리적 거리가 생기면서 아이 입장에서는 ‘또 떨어진다, 관계는 언제든 이동한다’는 무의식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은 감정은 깊지만 표현은 절제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랑 분배 경험 : 은빛이는 이미 사랑은 분배된다는 걸 둘째 동생으로 경험했어요. 막내동생의 탄생으로 이를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내가 잘해야 중요한 존재로 남는다.’는 신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강한 인정 욕구와 성취지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환경 전환에 따른 내성 : 은빛이는 어린 나이에 환경은 변할 수 있다는 걸 체득했습니다. 이는 변화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아이는 성인이 되어 이직이나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비교적 잘 감당하는 타입이 될 수 있습니다.
분리와 독립의 경험 : 발달 단계상 7살은 사회 속 한 개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부모와 마찬가지였던 조부모님과의 거리와 각자 방 사용은 심리적 자립 훈련이 되어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능력과 자기 세계가 분명한 성인으로 자랄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 가치감의 씨앗 : 가족 중 가장 큰 방을 배정받았다는 건 아이에게는 ‘나는 중요하다’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는 초기 버려짐 감각을 일부 상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는 중심에 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으며, 리더 포지션을 자연스럽게 맡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다자녀 구조 속 균형 감각 : 3남매 중 장녀, 중간자, 돌봄자의 역할은 타인의 위치를 읽는 능력을 발달시켜 줄 확률이 높습니다. 이는 성인이 되어 조직 내 중재자 역할로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읽는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막내동생이 태어나고 아빠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전보다 더 바빠지셨어요. 매일 새벽 일짝 나가, 밤 늦게나 새벽에 들어오실 때가 잦았어요.
실질적으로 3남매를 돌봐주셨던 조부모님과는 거리가 생기면서 엄마는 종종 은빛이와 동생들에게 말을 하셨어요.
“엄마 없으면, 누나(언니)가 엄마야”
은빛이는 집에 있을 때도, 밖에 있을 때도, 동생들을 돌봐야 했어요. 가끔은 너무 힘들고, 귀찮았지만 은빛이의 내면에는 점차 돌봄자의 정체성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8살 은빛이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의 엄마가 되고 있었어요.
어른 역할을 조기 부담 : 은빛이는 발달 단계에 비해 이른 시기에 돌봄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서적으로 조숙한 모습을 보이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감정이나 욕구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패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험의 제한 가능성 :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환경은 은빛이가 나이에 맞는 놀이와 휴식 경험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경우, 타인의 문제까지 스스로 해결하려는 부담감이나, 정서적 피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호자 성향과 리더십 형성 : 동생들을 돌보는 경험은 아이가 보호자적 성향과 리더십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공동체 내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책임감과 자립성 발달 : 어린 나이부터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은 책임감과 상황 판단 능력을 또래보다 빠르게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자립적인 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계 민감성 발달 :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과 필요를 민감하게 살피는 공감 능력이 발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또래 관계나 사회적 관계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은빛이는 그동안 부모님 보다 조부모님과 더 가깝게 지내면서 공부 보다는 놀이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은빛이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 한글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아마도 엄마는 그 당시 속상함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맞벌이로 지친 심신, 그리고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할머니와의 거리까지 생기게 되니, 당시 34살의 엄마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안타깝게도 은빛이에게 전달이 됐던 거 같아요.
엄마가 은빛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나서부터, 은빛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어려워졌어요.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면, 은빛이는 불쾌한 감각을 느끼곤 했습니다.
다행히 그 당시 은빛이의 학원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집에서 한글 교육을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이셨어요.
자기효능감 저하 : 은빛이의 엄마는 은빛이가 한글을 떼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에게 ‘늦은 아이, 못하는 아이’라는 메세지를 줄 수 있어요. 이는 완벽주의 혹은 회피 성향으로 이어질 수 있고, 비교나 압박이 강했다면 새로운 도전 앞에서 위축되거나 시작 전에 포기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