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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Feb 17. 2023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없어서
미니멀 라이프

를 결심했습니다

평범했던 오후가 평범하지 않게 흘러갔다. 매일 살던 집, 똑같은 거실인데 그날따라 다르게 느껴진 게 시작이었다. 작은 거실 4면을 둘러싼 가구들, 바닥에 흩어진 아이 장난감, 소파에 널브러진 담요, 탁자 위를 덮은 노트와 종이 뭉치, 여러 색깔의 펜들.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생명이 생겼는지, 나를 두 손으로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그때 머릿속을 지배한 건 오직 이 생각 하나뿐.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남편이 미국 유학생활을 하며 우리는 가진 돈을 전부 써버렸다. 영국에 왔을 때는 거의 빈손이었는데 1년을 100만 원씩 월세를 내고 살다가 엄마에게 보증금을 빌려 은행과 손잡아 도시 외곽에 마당 있는 집을 장만했다. 허름한 동네에 70년 된 자그마한 곳이었지만 내 생애 첫 "내 집"이었으므로 매우 기뻤다. 


하얀집이 우리집 - 35평 정도 되는 듯. 근데 복도와 계단으로 내어준 공간 때문에 체감 평수는 30평 미만.


살다 보니 집이 점점 작아졌다. 스스로를 맥시멀리스트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결론적으로 맥시멀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내 손으로 산 물건들이 쌓이고 쌓이다 나를 누를 정도의 맥시멀리스트가 된 것이다. 큰 집으로 이사 가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다. 근데 돈이 없다. 큰 집 장만할 돈은커녕 이 코딱지 같은 집 대출도 한참 남았다. 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당신도 그렇다고? 우리는 모두 희극배우였나?


큰 집이 없어서 나는 불행해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책이 효과를 발휘했다. 미래의 걱정을 끌어오는 대신 현재를 살라고 여러 자기 계발서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 때가 온 것이다. 그 생각을 남편에게 나눴다. 내 딴에는 비장했다.  


"여보, 나,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응, 알았어."


남편의 반응이 시원찮다. 나름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인데.  


"트랜디해지려는 게 아니야."

"그래."


어후 답답한 양반. 반응을 보이며 응원을 해야지.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동안 너무 생각 없이 물건을 쟁이면서 살아온 것 같아. 불필요한 것도 많이 사고 말이지. 그래서 이참에 집안의 짐도 줄이고 소비습관도 미니멀리즘 하려고 해. 그저 생활 방식을 바꾸겠다 이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야. 일종의 가치관의 변화라고나 할까? 신념? 아, 이건 너무 거창하다. 냉장고도 좀 헐렁하게 채우고 싶어."


그제야 남편이 길게 대꾸를 했다. 


"내가 맨날 하던 이야기 아니야? 음식 재료들 한꺼번에 많이 사지 말고 조금씩 사자고." 


며칠 전 음식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초록색 곰팡이로 덮인 사과가 떠올랐다. 여보야, 질책하라는 게 아니고 응원을 하라고, 응원을! 대화의 방향이 틀어지려는 것을 겨우 막아선 채, 남편의 물건은 허락받고 정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나의 미니멀리즘을 향한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들 하니 그것을 활용하면 최고의 인테리어는 버리기가 아니겠는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1) 짐도 정리하고 2) 집도 넓히고 3) 인테리어도 해보겠다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노리며 나는 버리기 작전에 들어갔다. 장롱 맨 구석에서 먼지를 듬뿍 얹고 숨어 있는 인테리어 용품부터 처분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 2023년 1월부터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여정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습니다. 집 치우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관련 책도 읽고 실행을 하다 보니 머릿속으로만 그려온 것과는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써 나갈 계획이니 이 글은 <도전기>쯤 되겠습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이왕이면 뜻한 바를 멋지게 해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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