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하니까 집안 정리가 시급해 보였다. 문제가 생겼다. 뭐부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들(현재 쓰고 있는 살림살이) 먼저 치우자니 버릴 게 아니라면 창고나 수납공간에 넣어야 하는데 우리 집 창고는 거의 포화상태였다.
차라리 옷부터? 장롱을 열었다. 정리할 게 없다. 몇 년 전부터 의류는 최소한으로 사면서 안 입는 것은 기부해 왔기 때문에 붙박이장 한 칸과 3단 서랍장 하나만 차지할 정도로 줄인 상태다. 일단 패스. 그때 옷장 옆 칸에 있는 인테리어 소품들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감이 왔다. 이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되었구나. 얘들아, 일단 나와 보자. 누가 누가 숨어 있나 어디 보자, 얘들아.
인테리어를 위해 태어났으나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해 어두운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외로움을 견뎌온 용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집도 작은데 참 많이도 모았다. 한국에 살 때 다이소에서 산 것도 있고 결혼 전 썸 타던 남자에게 선물 받은 인형에다가, 세계여행 당시 기념품으로 산 것들, 미국 유치원에 기증했다가 다시 돌려받은 한국 정서 담긴 애들도 튀어나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미국 야드 세일과 영국 채리티 숍에서 중고물품을 싼 값에 데려온 아이들도 많다. 살 때는 저렴하게 샀다고 뿌듯해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특별한 기준도 없이 볼 때마다 싸다고, 예쁘다고 산 소품들은 정작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거실이며 주방이며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창고 안으로 직행. 몇 번이나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혹시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쓸 것 같아서였으나 큰 집으로는 언제쯤 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인테리어 소품 본연의 임무를 생각했다. 집안을 돋보이게 만들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 그런데 이 아이들은 우리 집 창고에서 자리만 차지한 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다시 자격을 주어야겠다. 하나씩 소중하게 먼지를 닦아냈다. 추억 때문에 떠나보내기가 힘든 몇몇은 상자에 따로 담아 붙박이장에 넣었다. 나머지는 큰 부직포 가방에 모아 담은 뒤 다음날 채리티 숍에 기증했다. 부디 다른 집 거실 선반, 누군가의 책상 위에 올라가 반짝반짝 빛을 내려무나.
미니멀리즘이 크게 히트를 쳤을 무렵, 사람들이 가장 놀란 부분 중 하나는 깔끔하다 못해 뭐가 너무 없는 집안 풍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서 한편으론 꽉 차 있는 우리 집과 비교하며 놀라곤 했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정도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내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부분은 "쓰지 않는 물건은 정리하고 / 쓰지 않을 물건은 사지 않는 것"이다.
모델하우스 같은 집, 처음부터 그건 나의 기준이 아니었다. 우리 집을 그 정도까지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로 가족이 머무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욕심이 넘쳐 이것저것 사모으는 일은 이제 안 할 것이다. 아무리 싼 값에 얻을 수 있어도 (설령 공짜라 해도) 사지 않으려 한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붙박이장 속에 있던 소품 중에 가장 좋아하던 것들을 꺼내 거실 선반에 옮겨놨다. (아래 사진 왼쪽) 미국 살 때 하나에 5불씩 주고 산 것인데 <Yesterday' Child - The Dollstone Colletion> 시리즈 중 하나다. 매우 아낀 나머지 몇 년 동안이나 창고 안에 묻어뒀다니, 대체 난 이걸 언제 즐기려고 했던 것일까. 미니멀리즘을 향한 여정에서 좋은 것 중 하나는 뒤에 있던 나의 행복을 앞으로 꺼내놓는다는 점이다. 마음에 쏙 든다.
* 2023년 1월부터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여정을 기록하는 중입니다.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습니다. 집 치우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관련 책도 읽고 실행을 하다 보니 머릿속으로만 그려온 것과는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써 나갈 계획이니 이 글은 <도전기>쯤 되겠습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직 미지수입니다만, 이왕이면 뜻한 바를 멋지게 해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