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 식성은요
나는 길거리 음식을 좋아한다. 똑같은 떡볶이라고 해도 분식집에 앉아서 먹기보다는 포장마차에서 서서 적당한 매연과 미세먼지가 듬뿍 든 공기를 양념으로 곁들인 불량스러운 떡볶이를 먹는 게 더 좋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엄지 척'이다. 더울 땐 땀 뻘뻘, 추울 땐 손 호호 불어가며 각종 튀김, 순대와 간, 꼬치 어묵을 맛보는 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 집 개가 나를 닮았다.
꼬댕이 역시 길거리 음식을 사랑한다. 집에서 깔끔하게 먹는 간식도 좋아하긴 하지만 이왕이면 땅에 떨어져 흙범벅이 된 것, 누가 한번 밟고 지나갔을 법한 자태를 뽐내는 각종 먹거리를 찾아 산책만 했다 하면 이리 킁킁 저리 킁킁하느라 정신 사납게 돌아다닌다.
아, 영국이여, 영국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어찌하여 쓰레기통을 두고도 아름다워야 할 거리에 쓰레기를 휙휙 버릴 수가 있단 말이오. 당신들 덕분에 꼬댕이는 평소라면 맛보기 힘든 진귀한 길거리 음식을 배불리 먹게 되었지 않소.
햄버거나 샌드위치는 왜 먹다 버리는 것이오? 내가 알기로 그대들은 감자칩 러버라 들었소만. 우적우적 씹어 삼켜 위속으로 보낼 것이지 먹다 남겨 땅에 깔아 두면 어쩌자는 건지 한국에서 온 젊은(?!) 여인은 알다가도 모르겠소. 동네에 개가 많다는 것쯤은 눈이 있으면 알 터. 개들은 신장 기능이 약해 소금 들어간 짭짭한 음식은 독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오!
씹다 버린 껌. 가끔 길을 걷노라면 희고 뽀얀 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진회색 아스팔트 길거리에서 어찌나 눈에 잘 띄는지 하마터면 광채가 난다고 착각을 할 정도다. 내 눈에도 이러니 개눈에는 오죽하겠나. 견생 5년 차에 꼬댕이는 참으로 많은 '씹다 버린 껌'을 다시 씹어 삼켰다. 먹다 남은 사과, 당근 쪼가리, 터진 양상추, 식빵 조각 등등 길거리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우리 동네 개 한 마리가 초콜릿을 먹고 죽었다.
개한테 초콜릿이 위험하다는 소리는 진작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죽은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길거리 음식에는 초콜릿도 포함된다. 그뿐 아니라 사탕이나 젤리 등도 많이 떨어져 있다. 부활절이나 핼러윈이 끝난 다음날이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해 핼러윈 다음날 산책할 때는 초콜릿 한 조각을 겨우 피했는가 싶었는데 바로 앞에 또, 그 앞에서 또 발견되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흘린 돌처럼 가시는 길 사뿐히 즈려밟게끔 떨어뜨려놓아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위험하기로는 닭뼈도 만만치 않다. 소뼈와는 다르게 닭뼈는 날카롭게 부러지기 때문에 개가 씹을 때 잘못 먹으면 위장 등에 상처를 낸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닭고기의 냄새가 밴 닭뼈는 개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된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입에 한번 물었다 하면 빼낼 재간이 없다. 먹을 것, 즉 생존이 걸린 문제다 보니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앙칼지게 고개를 내빼고 으르렁거리는 탓에 일단 꼬댕이 입으로 들어간 닭뼈를 빼앗지는 못한다.
상황이 이러니 산책은 우아하게 시작했다가도 결국은 먹으려는 자와 못 먹게 하려는 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집에서 배불리 먹고 나가면 길거리 음식을 덜 주워 먹게 될까 봐 산책 전에 잔뜩 먹인 적도 있지만 '밥배 따로, 길거리 음식 배 따로'라는 사실만 밝혀졌다. 이불 밖이 위험(?!)한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활동과 움직임이 사람에게 필수이듯, 개들에게 산책은 필수다. 이런저런 냄새를 맡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그것 자체가 즐거운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개들의 냄새 지각능력은 인간의 1만 배에서 10만 배 정도라 한다. 매일 맡는 집안 공기뿐 아니라 다양한 길거리 냄새를 맡는 게 삶의 낙일 것이다. 위험을 감수할만하다.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씩 꼬댕이와 함께 하는 산책은 내 삶에도 큰 즐거움의 시간을 선사한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둘러볼 여유도 선물하고 써야 할 글의 구성을 기획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만약 꼬댕이가 없었다면? 어휴, 하루종일 집에 붙어 앉아 살만 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 100% 막을 수 없을지라도 먹으면 안되는 위험한 길거리 음식은 없는지 거리를 두루두루 잘 살피는 수밖에.
* <개새육아>는 주 2회 발행합니다. 같은 주제로 개 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