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한집에 살며 끼니를 같이 먹는 반려 동물이 있다. 동물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인 듯 생활하는 앵무새가 있어 반려 동물이라는 용어 대신 반려 식구(食口)로 부르고 있다. 밥을 같이 먹지만 같은 밥(쌀)을 먹어서는 안 되는 묘한 가족이 되었다.
1. 호(虎)시탐탐보다 무서운 앵(鸚)시탐탐
앵순이는 먹을 것을 보면 호랑이보다 매섭게 바라보며 눈빛이 달라진다. 특히 사람이 먹는 밥을 보면 환장한다. 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전기밥솥에 김 올라오는 소리만 들어도 반응한다. 구수한 밥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 앵순이도 덩달아 흥분하며 즐거워한다.
그러고 보니 향기 향(香)이라는 글자도 밥 짓는 냄새와 연관이 있다. 수확한 벼(禾)를 솥(曰)에 넣고 밥 지을 때 나는 향기를 표현한 글자가 향(香)이다. 원초적인 식욕과 관련된 향기는 아무래도 밥 짓는 향기일터다.
그런데 너는 새인데? 왜 밥 냄새에 흥분하니?
밥솥 뚜껑이 열리는 소리는 다른 방에서도 알아듣고 주방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뚜껑을 살살 열어야 한다.
앵순이의 밥 사랑은 유별나지만 주식으로 먹을 수 없다. 가열된 전분은 소화불량을 일으켜 위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먹지 못하게 말리면 더 먹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는 사람이나 새나 똑같은가 보다. 앵순이는 앵시탐탐 밥솥을 노리고 있다. "안돼!"라는 소리는 잘 알아들어서 몰래 눈치 보며 밥을 훔쳐먹는다.
설거지하기 위해 꺼내 놓은 솥에 들어가 만찬을 즐기고 있는 앵순이를 발견했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사고를 치고 있었다.밥풀 한 알이라도 더 먹기 위해 007 작전 뺨치는 침투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거꾸로 매달려서 밥 먹는 일도 가능하다.
앵순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조리도구는 당연 밥주걱이다. 주걱에는 항상 밥풀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주걱이라고 하면 놀부에게 주걱으로 뺨 맞는 흥부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반려 식구인 앵순이가 떠오른다. 앵순이가 밥주걱에 집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2.밥 먹을 때 건들면 새도 문다
밥을 소홀히 관리하면 앵순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남은 밥을 냉동시키기 위해 비닐에 담아 놓았는데 잠시 뒤 끼룩끼룩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는 앵순이가 가장 행복할 때 내는 소리다. 설마 싶어 달려와 보니 앵순이가 비닐에 넣어 둔 밥을 신나게 파먹고 있다.
비닐에 구멍을 뚫어 밥풀을 빼먹으며 끼룩끼룩 행복한 노래도 부르고 있다. 앵순이는 따뜻해서 더 맛있는 밥을 혼자 독차지해서 신나게 먹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밥을 뺏었더니 엄마에게 달려와 손을 물었다. 짧은 두 다리로 얼마나 빠르게 달려와 물어버리는지 피할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새 빡쳤나 보다.
앵순이도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아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끼룩끼룩 행복하던 음성이 짹짹짹! 분노의 외침으로 바뀌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새도 건들지 말라고!
물려서 아픈 손을 보니 순간 배신감과 억울함이 몰려왔다
밥풀 하나에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밥을 남기면 괜히 앵순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밥그릇을 비우는 가족 문화가 생겼다. 앵순이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도 줄었다.
쌀 한 알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뜻하는 米라는 한자를 나눠보면 八(8)+ 十(10) +八(8)이라는 숫자가 숨어 있다. '쌀의 날'이 8월 18일인 이유기도 하다.
쌀이 얼마나 가치 있는 식품인지 집사들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밥풀 한 톨은 삐진 새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밥 풀로 꼬시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냉큼 날아가 애교를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탄수화물이 이렇게나 무섭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표현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생쌀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익힌 밥만 좋아하니 알다가도 모를 앵순이 마음이다.
*<개새육아> 매거진은 주 2회 발행합니다. 개이야기와 새이야기가 번갈아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