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 Jun 18. 2024

나의 연인들

레몬만큼 상큼한 그녀

지난 7월 4일 EBS의 문학산책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레몬 트리]라는 단막극을 보게 되었다.

Fool's Garden의 동명의 곡이 있는걸 아는 나로써는 드라마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였고, 소설을 읽는 듯한 드라마의 전개 방식에도 매료가 되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되었다.


드라마, 혹은 소설의 내용인즉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세상을 방관한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한 청년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항상 무언가를 개걸스럽게 배우며, 발랄하고 생기넘치는 한 여자의 연애 이야기 이다.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5년만에 재회하여 그 여자와의 러브스토리를 남자가 회상하게 되는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체면술사인 나는 5년만에 그녀를 만난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다.

[체면에 걸린 사람에게 체면에서 깨어나면 창문을 열라고 하지. 그때, 왜 창문을 여세요.하고 물어보면 창문을 열때마다 사람들이 하는말이 다 틀리지.]

[어머, 자기가 체면에 걸릴줄도 모른단 말이야?] 여자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얘기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동안 취업을 하지못한 무기력한 나는 어느 여름날 어딘가에 소속감을 갖고자 구민회관의 호신술 강좌에 등록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자가 먼저 나에게 접근을 했으며, 나는 딱히 여자가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여자를 막을 의지조차 없다. 그만큼 나는 그 시절 나의 삶에 무기력함만 느낄 뿐이였다.


나는 여자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에게 웃음이 있었고, 여자에게도 꿈이 있었다.

어느날 집에가는 버스안에서 여자가 [레몬 트리]라는 곡을 나에게 들려준다. 여자가 말한다.

[레몬 트리, 발음도 너무 예쁘지 않아? 상큼하고 정말 잘 어울리는 발음이야. 나는 나중에 레몬 트리라는 예쁜 까페를 만들거야. 그럴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 꺄르르..]여자의 소원은 레몬 트리라는 예쁜 까페를 갖는 것이라 했다.


발랄하고 상큼한 레몬 트리라는 제목의 노래만큼이나 여자는 밝고 상큼하다. 의욕이 넘친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언뜻언뜻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 여자는 어느순간 내가 다가가지 못하게 그녀의 침묵속에 빠져 어두운 그림자를 내비친다. 그런 그녀에게서 나는 내모습을 보는듯하다. 아니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속에서 나를 보게 된다. 그녀는 나의 도플갱어.


그녀를 보면 나는 이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일상의 나를 보는 듯하다. 이제 그녀와 헤어저야할 시기가 온 것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숨도 자지 못한체 나는 그녀와 이별의 장소로 동물원을 택한다. 그 우리안에 갖힌 동물들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이 저 우리 속 지옥에 있는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그녀 또한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임을 느끼며, 나는 카메라를 숨겨두고 그녀에게 그것을 찾으러 간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 여름날 뙤약빛 아래 그녀를 남겨두고 멀리서 그녀를 훔쳐보며, 그녀와의 만남을 나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5년 뒤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유명한 체면술사로 일하고 있다. 5년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보니 내가 그녀를 사랑했었는지 조차 의문스럽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좀처럼 품위를 찾아 볼 수 없다. 종교인의 아내라는 그녀는 두 돌된 딸아이를 두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녀와의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빨리 도망치고 싶다.


그런 그녀가 다음 약속을 고집한다. 나는 거절하고 싶지만 그녀는 꼭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마지못해 나간 그녀와의 재후.나는 그녀의 카메라를 돌려주리라 마음먹고 그녀를 만난다. 나는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서 그녀에게 체면을 건다.



[나를 왜 만나자고 한거지? 한 아이의 엄마인 네가 좀 품위있게 굴수는 없는거야?]

[나, 결혼 안했어. 거짓말이야. 그냥 한번 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어.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후회스러웠어. ]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눈물을 주루룩 흘린다. 마주앉은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한 나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어준다.


그녀는 포장된 모습을 벗어버리고 아직까지 안정되지 않은 그녀의 삶을 이야기 한다.


[나, 아직까지 그대로 살고있어. 넌, 많이 안정되어 보여. 난, 지금도 개걸스럽게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연애를 해. 한 남자를 만나서 그 다음 남자를 만날때까지 극장엘가고, 여관에 가지. 내 인생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돌아갈거 같아.정말 답답해 죽겠어.]


그녀의 고백을 통해, 나는 내가 정말 그때 그녀를 사랑했던 것인지 혼란스럽기만하고 이 가여운 그녀와 나와의 추억을 체면술사인 내가 지워버릴까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것 같아 그만 둔다.  나는 이제 그녀에게 [레몬 트리]하면 체면에서 깨어나여 왼쪽뒤편으로 걸어가 조용히 창문을 열고 오라고 얘기한다.


[레몬 트리] 남자가 얘기 하자 여자는 조용히 창문을 열고 걸어 온다. 남자가 묻는다.

[창문을 왜 열었어?]

[그냥..답답해서]


그녀의 삶은 아직도 답답하다. 그녀와 헤어지던 그날, 그녀의 카메라를 화장실에 숨겨놓고 찾으러 갔던 그날. 후에 카메라를 열어보니 그 안에 필름은 없었다. 그녀 또한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녀도 알고 있었으리라. 우리가 헤어질것을.. 겉으로는 밝고 상큼했던 그녀였지만, 그녀와 나는 그 때 우리의 삶이 지우고 싶을만큼 정말 무료하기 짝이없는 무미건조함의 한 조각일 뿐이였다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당시 나는 무기력한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 내 모습을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 그런 시절 나와 함께했던, 그녀를 보는것은 처절한 그때의 내모습이 다시 떠올라 정말 끔찍하기만 할뿐이다.


그녀와 헤어지는 길.


그녀를 바래다 주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에게서 도망치려한다. 이제 그녀도 남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떠나려던 찰나,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아까, 나한테 주려던게 뭐지? 선물 준다고 했잖아.]

[아..아니야. 그런거 없었어.]


그녀에게 속이 텅빈 카메라 따위는 이제 필요치 않다. 이제서야 그녀는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