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는 2000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홍콩 영화로 오래전 대학생 새내기 때 처음 영화를 보았다. 어제 넷플릭스에 화양연화가 있길래 다시 보았다. 부부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해서 그런가, 다시 보니 훨씬 재미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영화의 제목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꽃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회상하며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표현하듯 장만옥(첸 부인 분)은 모든 장면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기나긴 목과 팔 - 치파오가 너무 잘 어울리며, 다음 장면에서는 어떤 치파오를 입고 나올까 궁금해질 만큼 드레스의 향연이다. 장만옥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첸 부인은 아직 아이가 없고 젊으며 꽃처럼 아름다운데 남편은 매번 출장을 가고 집에 없다. 꽃이 최고 절정에 이렀는데 이를 만끽할 관객이 없으면 꽃이 제 소명을 못 한 듯, 첸 부인은 신혼을 즐겨야 할 시기에 혼자 쓸쓸하게 저녁에 국수를 사 먹는다. 첸 부인이 국수를 사러 갈 때면,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이웃집 남자 양조위(차우 분)와 우연히 집 앞 계단에서 마주친다. 두 남녀가 마주칠 때마다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노래가 흘러나오며, 슬로운 모션으로 천천히 지나가 이들이 잠시 마주치는 '찰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의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창문 너머 보는 시선>
영화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최소한으로 보여준다.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사람들, 사회적 정서상 금지된 것 (바람을 피우고 있는 양측 배우자들, 첸 부인 상사의 애인 등)은 목소리 또는 뒷모습만 등장한다. 얼굴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첸 부인의 집주인, 집주인 살림을 도와주는 여자, 직장 상사 정도. 일상생활에서 보는 이웃들, 소위 무해한 존재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반면 재미있는 부분은 차우의 친구의 얼굴은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도박을 즐기고, 홍등가를 자주 드나들 뿐만 아니라 홍등가에서 외상을 해 숨어 다니는 낯짝 두꺼운 남자이다. 왜 그의 얼굴은 보여줄까. 그는 파렴치한인 동시에 차우에게 그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았다고 귀띔해 준 친구이기도 해서일까.
두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 유리창 또는 창살을 넘어 대화하는 모습 등으로 자주 표현된다. 관람객이 비밀스러운 그들의 만남을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두 남녀가 이사한 아파트는 통로가 매우 좁고, 집주인 내외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1950년대 홍콩의 주거 상황과 사회상을 보여준다. 첸 부인이 혼자 저녁 식사를 준비할 참이면, 집주인 부인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초대를 한다. 집주인은 이웃과 같이 식사를 하고 마작을 두는 것을 즐긴다. 비좁은 아파트 구조와 통로가 이웃 간의 가까운 거리를 표현한다. 집주인과 이웃들은 첸 부인이 언제 외출하여 귀가하는지, 국수를 얼마나 자주 사러 나가는지, 국수 사러 가는데 이쁘게 차려입고 나가는지 등 감시 아닌 감시를 한다. 첸 부인은 차우와 아슬아슬하게 밀회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엇나갔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집주인한테 쫓겨나기 딱이다.
<옳고 그름의 경계는 모호하다>
첸 부인은 남편이 이웃집 여자(차우의 부인)와 바람을 피워 배신을 당하는 배우자이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의 요청으로 상사애인의 생일 선물을 사기도 하고, 상사 부인에게 상사 대신에 핑곗거리를 대주는 비자발적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배우자에게 같은 배신을 당한 차우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기도, 또한 차우의 사랑 고백에 금지된 선을 몇 번 넘을 뻔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도를 한 '그들처럼'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킨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영화 마지막에서는 몇 년이 흐른 후 차우가 혼자 캄보디아 불교사원에서 나돌아 다니다가 어느 구멍에 대고 한참 비밀을 털어놓은 후 그 구멍을 흙으로 막는 장면을 보여준다. 반면 주황색 천을 두른 어린 스님이 이 장면을 멀리서 바라본다. 어린 스님은 차우의 비밀을 들었을 수도. 아니면 못 들었을 수도. 그러나 적어도 그 누군가는 차우가 비밀을 안고 있다 묻고 간다는 것은 안다. 비밀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