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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훈 Apr 18. 2021

떠나간 파랑새들이 걱정스럽다

보리는 비어있는 방을 자주 쳐다보았다

가을볕이 여물어간다. 지난여름 극성이던 폭염이 변검(變瞼)*처럼 어느새 얼굴을 바꾸었다. 선선해진 밤하늘 달무리 사이로 반달이 걸려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 중국의 전통극 천극에서 볼 수 있는 가면술. 배우가 얼굴에 있는 가면을 극의 분위기에 따라 바꾸는 연출기법


지갑 속 카드를 꺼내 들다가 안쪽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어머니였다. 가을 단풍이 지던 어느 날 과천 대공원에서 찍은, 이제 유품으로 남은 한 장의 사진에는 그 날의 행복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이맘때면 차례 준비로 뭘 해야 할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걱정하셨지만, 내색 없이 혼자 감당하셨다. 철 모르는 우리는 탕수에 제삿밥을 말아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어머니는 불멸의 여인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가슴 먹먹하게 하는 분이다. 18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선산이 있는 마산에서 허물어진 봉분과 만나는 게 무척 낯설다. 생물학적 판단으로만 삶과 죽음의 영역을 갈라놓을 수는 없으리라.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기에. 


지난 명절, 성장기를 보냈던 학교 교정도 들러 보았다. 마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여기서 보냈으니 이곳은 진정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나 갈 때마다 도시 현대화로 젊은 날의 흔적도, 친구도 없어진 이곳에서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책가방을 메고 매일 다니던 골목도, 친구들과 놀던 하천과 철길도, 심지어 살았던 집마저도 없어졌다.


공허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곳은 초등학교 교정이었다. 그때는 운동장이 커서 한참 뛰어야 건너편에 닿았는데 지금 보니 무척 작았다. 어른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나니 달라진 것일까, 내 키가 커버린 것일까.


교정 벤치에 앉아 있으니 파노라마처럼 학교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한 친구가 떠오른다. 이름도 특이한 이화채! 창녕이 고향인 화채는 하숙을 하고 있었고 곁에 가면 늘 비누 향이 풍겨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다. 얼굴엔 약간 곰보 자국이 나 있었고 부드러운 성품에 은근한 인간미가 있어 그를 그냥 좋아했다.


그는 졸업 후 중학교를 다른 도시로 가야 한다며 헤어지기를 무척 서운해하였다. 서로 악수하고서 연락하자고 했는데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창녕을 지날 때나 창녕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천연기념물인 우포 늪에서 백로가 날면 그 친구의 다정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뭔가 방문을 긁는 소리가 났다. 이 야심한 밤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눈 비비며 문을 여니 하얀 물체가 쓱 들어왔다. 보리였다. 전신을 한 번 흔들며 추스르더니 이불 한 귀퉁이에 가서 앉는다. 아마도 옆방에 갔다가 아무도 없으니 나에게 온 모양이다. 아들이 결혼한 지 넉 달 여. 보리는 평소 살갑게 해 주던 그 손길이 그리웠는지 비어있는 방을 자주 쳐다보았다.

보리 ©손현

부모와 자식만 있던 한 가정에 말티즈 종(種)인 보리가 가족으로 같이 산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그러니 보리의 모든 감각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체취와 목소리, 장난질, 산책길이 얼마나 그리울까. 지난해 제 짝을 만나 떠난 딸의 방도 비어있으니 더욱 허전하리라.


하물며 30여 년 품 안에 있던 아이들이 가 버린 빈 공간에서 더 이상 함께 나눌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내의 어깨가 더 작아 보인다. 떠나간 파랑새들이 다 잘 살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오늘도 보리는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고, 그 애처로운 눈빛이 우리를 대신하는 듯하다. 


나이가 드니 지나간 일을 자주 화제에 올리게 된다. 건강, 운동, 추억담이 대화의 대부분이고, 테니스장에 가기보다 당구장에 자주 들러 힘을 덜 쓰는 운동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중에서도 대화의 공통점이 있다면 삶의 행로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했던, 소중한 사람에 대한 안부가 아닐까.


비록 가까이에 있지 못하거나 하늘나라에 있더라도 그 인연의 끈을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보리처럼 동물도 애타는 표현을 할 줄 아는데, 매정하게 돌아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빛바랜 어머님 사진 앞에서 안부 인사를 드려본다. 보고 싶어요.

생전의 어머님 모습. 2001년 가을 단풍 지던 날, 연미(동생)와 어머니와 과천 어린이 대공원에서 ©손훈

2018년 9월 19일(수)

글 | 손훈

편집 | 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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