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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부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by 손훈

오늘따라 천록(天鹿)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며칠간 온 비로 금천(禁川)에 물이 고이니 사뭇 예민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혀 빼문 모습은 다소 익살스럽다. 임금이 계신 지엄한 궁궐에서 저런 유머를 보여도 되는 것일까.


경복궁 영제교 아래에는 양쪽으로 두 마리씩 천록이 있는데 이 한 마리만 혀를 내밀고 있어 특이하였다. 정설은 아니지만 석공(石工)이 유머스러움을 표현했다는 설과, 비록 천록이 상상의 동물이지만 개처럼 혀를 내미는 습성을 나타냈다는 말이 전해진다. 어쨌든 물길을 따라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다는 역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혀 빼 문 천록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같이 혀 내미는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까.

경복궁 영제교 천록 (사진: 손훈)

서촌 세계정교 유지재단 골목 (사진: 손훈)

경복궁 서쪽 서촌으로 가보자. 통의동 백송터를 지나면 좁은 골목이 나오는데 창성동 미로미로(迷路美路)라는 표지판이 있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들어서면 예쁘고 고운 꽃길이 나타난다. 청포도 넝쿨아래 정돈된 꽃 화분과 구들처럼 생긴 돌더미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골목을 잘 가꾼 걸까.


이곳엔 1957년 하정효가 창시한 <세계정교 유지재단>이라는 신종교단체의 본부가 있다. 전국에 7대 본산을 두고 신도수가 80만 명으로 추산되며, 고유무술인 뫄한뭐루를 가르친다고 한다. 한글을 최고, 최선의 언어로 교리체계를 만들며 한민족의 정통성을 단군, 화랑, 세종, 충무공정신에서 찾아 전국 신전에서 천제(天祭)를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교의는 '한나라 사람살이'로 매우 가정적, 실천적인 삶을 추구한다.


본당입구에는 '세스팔다스 계옴마루'라는 팻말이 있다. 세스팔다스는 뜻, 삶, 짓의 님인 세 신격을 받들어 그 힘으로 우리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계옴마루는 높은 곳에 두루 계시는 님이라고 하니, 한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종교단체인 듯하다. 언제 와도 이 골목은 노란색 벽색깔과 함께 경건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준다.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 모두 사진 찍기에 바쁜 핫한 곳임에 틀림없다. 가을엔 슬쩍 청포도를 따먹으며 가슴 한편 즐거움에 젖어본다.


창덕궁 낙선재 뒤뜰 괴석 (사진: 손훈)

이번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으로 지정된 창덕궁으로 가보자. 한때 창경궁 일원이었던 낙선재 뒤뜰엔 괴석, 돌연지, 화계, 굴뚝 등이 있다. 그중 소영주(小瀛州)가 새겨진 야릇하게 생긴 괴석이 있다.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雲飛玉立(운비옥립)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우람한 돌에 뭐라고 각인했을까. 누군지는 모르나 흰 매의 빼어난 자태를 묘사하여 '날 때는 구름이 나는 것 같고 앉아있을 때는 우뚝 솟은 옥(玉)과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선인들의 정신세계는 다분히 학구적이며 이상향을 추구한다. 돌에도 피가 돈다(조지훈, 돌의 미학)든가, 무딘 칼을 숫돌로 가는 마음은 나를 벼르는 작업(송연희, 숫돌)이라고도 한다. 그저 흔한 돌들 중 좀 독특한 모양의 돌을 괴석이라 하고, 의미부여를 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괴석이 오랫동안 자연에서 버텨 오면서 보여준 신뢰감, 솔직성, 그리고 현자(賢者)의 모습이 아니던가. 우리는 운현궁 뜰에서, 경복궁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 화계에서도 다양한 괴석들을 마주 본다. 한편으론 다양한 각도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흥미를 자아낸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 (사진: 손훈)

前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 관장의 한옥집은 그야 말고 정갈하고 살고 싶은 곳이다. 집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자재가 고급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그 구분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서로 닮아 있었다. 그의 서재이자 사랑채의 문패에는 '杜門卽是深山(두문즉시심산)'이 그의 깔끔한 필체로 걸려있다. '문을 닫으니 바로 깊은 산중이다'는 뜻으로 로맨틱한 시심이 엿보인다. 그리고 문창살을 보면 용(用) 자살인데, 선생은 "용자살은 가장 정갈하고 조용하며 황금률이 적용된 비례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라고 평하였다. 가로가 1이면 세로가 1.618의 비율이 건축학적으로도 가장 이상적인 비례라고 한다. 문득 햇살이 창틀사이로 방에 내려앉는다.


방안은 환해지고 오수(낮잠)를 청하기 좋게 따스할 것이다. 밤에는 어떨까. 달그림자가 교교히 창틀을 건너와 우리를 사색으로 때론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 않을까.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물확, 향나무, 우물 그리고 인문석들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살다 보면 주위에 우리를 넌지시 미소 짓게 하는 게 많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에 매몰되어 있다. 동영상, 카톡, 유튜브, 넷플릭스, 심지어 조금만 궁금해도 ChatGPT에 물어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될지 걱정스럽다. 너무 편리함을 찾다 보니 AI에 의존하고 그러다 통신교란이 생기면 난리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결국 AI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우려되는 현상은 어른과 아이들과의 소통이 곤란해졌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경험과 지식을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궁금증을 즉시 풀어주고 더 정확한 지식을 주니 어른에게 묻질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이 IT 기술에 대한 기능이나 사용법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물질만능 시대에 더하여 세대 간 의사소통문제도 예사롭지 않다. 평균 수명이 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삶의 질과 세대 간 소통에 대한 진지한 해법을 모색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연 속의 아름다운 장면과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얘깃거리를 서로 공유한다면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경복궁 향원지처럼. (끝)

경복궁 향원지 (사진: 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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