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안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훈 Apr 18. 2021

나를 향한 순례길

여보게, 오랜만일세

벤치에 앉아 있다. 어떤 문화 행사에 참석하려고 기다리던 참이다. 한 사내가 술에 취한 얼굴로 다가온다.


“여보게, 오랜만일세.”


내 곁에 털썩 앉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게슴츠레한 눈빛과 거슬리는 말투 때문에 얼른 일어설 때였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나서 흘깃 돌아보았다. 그 자는 똥을 한 가득 싸고서 그 위에 퍼질러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똥 칠갑을 하고 있었다. 내 구두에도 조금 묻은 것 같아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는 말없이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빨리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다. 그런데 이 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혹시 오래전 알았던 학교 동기나 직장 동료가 아닐까. 얼마 전 어느 동아리 모임을 탈퇴하면서 실랑이를 벌였던 회장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으니 119에 신고해 구급차를 부르자. 그 사람이 옆에 둔 검정 가방이 눈에 띈다.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보기 두렵다.




꿈이었다. 옷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사방이 캄캄하여 어딘지 모르겠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내가 강원도 횡계의 어느 민박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이번 꿈은 너무나 생생하고 불쾌해서 더 오래 머물렀다. 문득 그 사람이 잠재의식 속의 또 다른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아내와의 의견 충돌, 아이들 혼사 때 친지들과의 갈등,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불만 등 켜켜이 쌓였던 심기가 이렇게 지층(地層) 밖으로 표출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 속에서 서울을 떠난 후의 행적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나흘 전, 정선 오일장에서 메밀전병과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한 마리 뱀이 산허리를 감아 도는 듯한 조양강을 따라 걸었다.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길가의 코스모스가 강바람을 따라 산들거렸다.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었다. 여기서부터 아우라지와 노추산, 안반데기를 거쳐 대관령 옛길을 지나 강릉 경포해변까지 연결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면서 평창군, 정선군, 강릉시를 잇는 131.7킬로미터의 이 새로운 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로 불리는데 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다.
* 중앙일보에서 올림픽 아리바우길 가이드북 PDF 파일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문화체육관광부/중앙일보


길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끝없는 그 길에서 무얼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이번 여정에는 걷는 즐거움보다 홀로 생각하고 혼자 얼마나 견디어낼지 가늠해 볼 작정이었다. 이제는 풀만 무성한 나전역을 거쳐 아우라지역, 구절리역을 지나는 동안 오지를 오가던 석탄열차를 떠올렸고, 남아있는 철길 위에는 레일 바이크를 즐기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강원도에 이토록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길이 있었냐며 걷기를 좋아하는 길동무의 소탈함도 여행의 잔잔한 맛을 돋우었다. 노나라(魯)의 공자와 추나라(鄒)의 맹자를 기려 이름이 된 노추산(1,322미터)을 땀 흘려 산행하고서 동행은 서울로 먼저 돌아갔다.


그렇게 나흘째부터는 나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강원도 중부를 종단하기에 식당이나 숙소 찾기가 어려운 코스다. 한뎃잠을 예상하여 침낭과 간식도 준비했다. 은근히 별 밤을 기대하며 자연에서 노숙할 데가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전국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안반데기로 가는 능선 길에는 비 대신 운해(雲海)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웠다. 길은 멧돼지가 파헤쳤는지 검붉은 흙의 속살이 드러나 있고, 인적도 없이 간간히 길섶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릿한 시계에 사람 형상의 나무를 만날 때면 소름이 돋는다. 사방이 너무 적막하여 숨소리마저 죽여야 할 만큼 예민해졌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걸으며 마주한 풍경 ©손훈


4시간가량을 산에서 헤매다가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안반데기에 도착했다. 다랭이 논처럼 가파른 산비탈에 펼쳐진 거대한 초록빛 배추밭을 보니 장관이었다. 여기저기 출하하는 광경도 보였다. 이곳 배추는 1천 미터 고지에서 자라서인지 큰 포기에 단단한 속살로 인해 상등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여름 폭염 때문인지 배추들이 많이 녹고 상해 있었다. 언론에서도 올해 농사는 예년보다 20~30% 줄어들어 걱정이라고들 했다.


백두대간 구간인 고루포기산(1,238미터)에서 능경봉, 대관령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어 해가 저물기 전에 빨리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해야 했다. 여전히 짙은 안개와 축축한 공기, 고립무원(孤立無援)을 벗어나려고 걸음이 빨라졌다. 어둠이 벌써 뒤통수에 와 있어 뒤를 돌아보기 무서웠다. 이런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휴게소다. 반가움에 겨워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나온 날의 애환이 유성처럼 스쳐갔다. 배는 고프고 몸도 지쳐 식당과 숙소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식당들은 벌써 문을 닫았고 버스마저도 끊겨 버렸다. 캄캄한 어둠만이 있고 택시를 불러도 받지를 않는다. 별 수 없이 근처에서 노숙을 해야겠다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횡계에서 온 빈 택시를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고맙다는 말이 연신 나왔다. 돌이켜보니 하루 종일 만난 이도, 말할 기회도 거의 없었으며 오로지 머릿속의 앙금 덩어리와 뒤틀린 심사로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나 시절은 왜 그리 떠오르지 않는 걸까. 때론 생각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다음날, 꿈자리가 사나워 대관령 옛길부터 강릉까지는 조심해서 걸었다. 행여나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조상들이 강릉에서 한양으로 갈 때 지나던 대관령 옛길은 넓고 시원한 계곡도 있어 주막에서 쉬어갈까 했으나 그냥 지나갔다. 강릉 김 씨의 조상 김주원이 묻힌 무덤과 주변 전각들도 웅장했으나, 그뿐이었다. 마침내 경포해변에 이르러 6일간의 트레킹을 마쳤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숲 속을 벗어나 푸른 하늘에 걸린 하얀 풍차(풍력발전기)를 보았을 때, 바다 너머 붉은 태양이 질 때, 택시기사의 ‘잘 오셨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 그리고 길가에 핀 해맑은 해바라기의 모습에서 어떤 따뜻한 기운이 전신에 퍼져왔다. 그 기운이 상처 난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졌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처럼, 해골에 담긴 물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내 마음이 어제와 오늘 달라졌을 뿐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거늘. 물질보다 마음의 평정(平定)을 찾아 나선 고승과 순례자들의 행로를 조금 알 듯하다. 내 안에서 펄쩍 뛰는 마음을 다스리기엔 역시 혼자만의 순례가 가장 좋지 않을까. 꿈에서 비롯한 마음 길이었다. (끝)


2018년 11월 10일(토)

글 | 손훈

편집 | 손현

매거진의 이전글 안토니오의 어느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