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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Dec 31. 2022

다시 흥을 끌어올려보자

2015년 6월 24일 밤부터 6월 26일

6월 24일 나머지

결국 수리를 맡겼다.

스페인어도 잘 못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날 등쳐먹으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했지만, 그리고 아마 바가지를 썼겠지만, 바가지를 쓴 덕인지 핸드폰은 다른 핸드폰으로 바뀌지도 더 깨져오지도 더 망가져오지도 않고 잘 고쳐졌다. 이제는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얼마나 마음이 가벼웠는지, 어젯밤엔 심지어 클럽에 다녀왔다. 한국인이라 말을 튼 친구가 마침 동갑이었고, 이미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랑 친해져 있었고, 춤추러 갈 건데 같이 갈 거냐는 이야기에 홀랑 쫓아갔다. 누가 훔쳐갈 핸드폰도 없겠다, 돈도 얼마 안 들고 다니고 있겠다, 오히려 겁날 게 없었다. 는 말도 안 됐다.  


조심해라 조심해라 얘기를 잔뜩 듣고 온 남미였으니까 사실은 승모가 잔뜩 굳을 정도로 긴장이 됐지만 그래도 한국인도 같이 있는데 별일이 있겠냐, 같은 호스텔 친구들 있는데 뭐 어떠냐 싶기도 했고 이상한 거 안 먹고 정신 잘 차리면 되겠지 하는 용기와 호기심이 겁을 이겼다. 


클럽이라기엔 테이블을 치운 술집 같은 곳이었다. 맥주를 하나 사서 마셨고, Bailando 노래가 자꾸 나왔던 기억이 난다. 동양인이라곤 우리 둘 밖에 없는 곳에서 긴장감에 더해 도파민이 올라왔다. 한국인 친구는 같이 온 무리의 어떤 남자애와 썸을 타는 모양이었다. 나는 같이 왔던 다른 친구들과 춤을 추다 수다를 떨었다. 나이가 적잖아 보이던 어떤 스위스 남자애는 직장인이라고 했다. 그러면 얼마나 길게 온 거냐고 물었더니 한 달을 왔댔다. 한 달을 어떻게 오냐, so jealous 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놈의 유러피안들. 진짜 부러워 죽겠다. 


6월 25일

25일 하루는 좀 사리고 다녔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은 Biblioteca Vasconceios. 

도서관이었는데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어서 궁금했다. 사진만으로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책장이 늘어선 복도가 여러 겹으로 만들어져 있는 구조였다. 생각보다 매우 쾌적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할 줄 안다면, 혹은 읽을 만한 책을 좀 들고 왔더라면 구석 어디서엔가 시간을 꽤 오래 보내고 싶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어 까막눈에다 책도 없었으니. 그저 사진만 찍어대다 관광객답게 돌아나왔다.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Biblioteca Vasconceios의 사진


그리고 6월 26일

26일은 박물관 투어를 했다. 

목적지는 수마야 박물관과 국립 인류학 박물관. 사실 박물관보다는 미술관 취향인 나라서, 그냥 여기들은 의례상, 그래도 왔으니 가본다 같은 마음으로 갔던 곳들인데 생각보다 크고 방대한 사이즈에 놀랐다.

특히 수마야 박물관은 건물 외관이 압도적이었다. 현대적이고 삐까뻔쩍한 외관의 건물은 놀라웠다. 내부 구성도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도 마지막 두 층이 신기했다. 한 층은 어떤 여배우의 영상, 화보, 의상 등으로 가득 찬 층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배우이지만서도 한 사람을 위해 이 넓은 공간을 할애한 것이 인상 깊었다. 

가장 마지막 층에는 조각상이 가득이었다. 그나마 아는 달리와 로댕의 작품들이 있었던 것 덕분에 기억에 남았고, 특히 달리가 조각도 이렇게나 많이 남겼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렇게 멋진 건물이라니! 정말 세상을 넓고 볼 건 많다!


돌아오는 길은 덥고 더웠다. 배가 고팠다. 길에서 타코를 파는 트럭에서 타코를 먹어보기로 하고, 시험삼아 한 피스를 시켰다. 약 700원 정도 하는 돈이었다. 웬 비닐을 씌운 플라스틱에 접시에 건네받은 옥수수 또르띠아의 타코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이렇게 맛있다니! 이렇게 한국에서 먹던 타코와 다르다니! 


그리고 나는 그렇게 옥수수 또르띠야의 신봉자가 되고 만다. 


이날의 인스타그램에는 이게 700원입니다라고 적었다.


대영박물관 같은 거대한 역사박물관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국립인류학박물관도 크게 내 흥미를 끌지는 못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곳인데 사이즈에 너무 놀랐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웅장했고,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로 이어지는 통로 잠깐잠깐에도 볼것들이 잔뜩이었다. 

역사에는 문외한인 나라서, 아주 흥미 대박! 인건 아니었지만, 멕시코라는 넓은 땅 곳곳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비슷하고도 다른 형태의 문명들이 나타난 것들이 재미있던 하루였다. 

날이 흐렸다. 입구에서의 뻘쭘한 나.


그래도 어찌 됐건 다시 여행이 on track 인 느낌. 앞으로의 남은 오십며칠도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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