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9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뜨거웠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햇볕에 피부를 내놓자마자 지글지글 익는게 느껴졌다. 어제 그냥 지나쳐온 수영장은 꽤나 깨끗했다. 이따가 꼭 몸을 담가야지, 다짐했다.
로비에 찾아가 벽에 붙어잇는 브로셔를 살펴봤다. 서핑 수업을 듣고 싶었다. 남은 남미 일정이 기니까 스페인어 수업도 듣고 싶었다. 몇군데 그런 레슨을 제공하는 곳이 있는 듯 싶었다. 추천해줄만한 곳이 있냐 물으니 몇군데 전화를 돌려줬다. Oasis 로 가보라고 했다. 스페인어 수업도, 서핑 수업도 제공하는 곳이었다. 어떤 시스템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숙소에서는 걸어서 십오분 정도의 거리였다. 오늘부터도 바로가 가능하대서 수영복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탓인지, 바닥은 바싹 말라있었다. 내가 걸을때마다 내 뒤로 모래 먼지가 휘날렸다. 동네에는 높은 건물이 통 보이지 않았다. 그늘 밑으로 숨을데도 없이 그저 온 몸으로 햇볕을 받아내야 했다. 여전히 고민했다. 괜한 동네에 온걸까...
그래도 근처에 도착하니 가게가 몇개 보였다. 메뉴델디아를 파는 작은 식당도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이따 점심은 여기서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학원(?)은 가정집 같이 생긴 곳이었다. 어디에서 전화를 해줬었다고 이야기하니 그럼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화장실도 정말 가정집 화장실 같았다. 욕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워낙 더워서 수영복에 래시가드만 걸치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아직도 마음은 아리송했다. 나는 스페인어도 못하고... 방도 혼자 쓰고 하는게 오히려 무섭고... 했던 어젯밤의 마음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의 일정을 줄여야하나 하는 고민이 여전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신체 크기를 가늠해보더니 이 정도면 되겠다며 보드를 하나 골랐다. 내가 여태껏 타본 보드 중 가장 작은 보드였다. 펀보드 사이즈라고 했다.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 잠자코 따라갔다. 선생님은 보드를 들고 어느 돌계단 향해 걸어갔다. 해변이 꽤 먼가 본데? 하는 생각과 함께 보드 들고 멀리 왔다갔다 하면 힘든데... 하는 볼멘 생각이 함께 삐져나왔다.
하지만.
돌계단을 조금 내려와서 탁 트인 전망에 해변을 내려다보니 마음이 싹 달라졌다.
바다 색이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캐리비안 해변의 비취색 바다라는게 바로 이런거구나. 게다가 해변 주변으로 펼쳐져있는 녹음과 화려한 색의 꽃들까지. 아름답다는 말이 너무 문어체적인 느낌이라 잘 쓰지 않았는데, 그냥 아름답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바다에 떠있을때 기분은 더했다. 물이 맑아서 꽤나 깊은 물인데도 바닥이 다 비쳐보였다. 서핑보드에 앉아 해변을 바라보는데 그림이 따로 없었다. 잠겨있는 발에 닿는 온도도 기분이 좋았다. 미지근한듯 하지만 또 산뜻한 바닷물.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윤슬. 기분좋은 사이즈의 파도.
그냥 여기 와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해졌다.
이런 동네에 찾아와 이런 행복을 누리고 있는 내가 대견했다.
이게 여행이지. 이런게 행복이지. 뒤의 정해진 일정만 아니라면 여기서 벗어나질 못할정도로, 그저 행복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