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일부터 4일
1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루어지지는 않아서 아주 잘 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려서 크게 피곤하지 않은걸 보니 버스 잠 치고는 나름 꿀잠 잤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산크리스토발은 정말 고산지대구나, 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하늘이 정말 낮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아기자기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침 7시에 도착한 터라, 딱히 연데도 없고 어차피 기념품 사는 것 말고는 딱히 "해야지" 했던 것도 없는 동네라서 찬찬히 산책을 했다. (사실 길 잃어버릴까 봐 막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전혀 속도를 내지 않고 느릿하게 걸었는데도 숨을 쉬고 있는 게 온전히 느껴졌다. 고산병에도 걸린다는 쿠스코에서는 어떡하지 걱정이 벌써 든다. 리마 도착하자마자 약부터 사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간도 남고 해서 언덕 위에 있는 성당까지도 올라가 봤는데, 올라가는 길에 마주친 현지인들은 이 계단을 뛰어서 왔다 갔다 했다. 대단. 이 사람들에게는 아침 루틴 같은 운동인 걸까?
지금은 Ooolala 라는 빵집에 들어와 있는데, wifi 가 전혀 안되어서 엽서를 쓰고 있다. 여기서 must buy 가 뭔지 찾아보고 기념품 좀 사려고 했는데. 뭐 사지?
아주 끔찍한 시간이었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정도 이르게 승강장에 가있었다. 플라야델카르멘으로 떠나는 24시간짜리 버스를 타기 전, 심심했지만 또 할 게 없어서 승강장에서 짐이나 찾고 쉬고 있을 계획이었다.
승강장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서까지만 해도, 내가 굉장히 운이 좋다고 즐거워했다. 메추리알만 한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박을 피해 승강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 뒤에는 우박이 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밖에 있었으면 쫄딱 젖었겠네, 미리 와있길 잘했다. 운이 좋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심상치 않았다. 점점 승강장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느새 바로 의자 아래까지 들이쳐서 모든 사람이 의자 위에 올라서고, 난간 위로 올라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짐은 저 멀리 짐 맡겨두는 칸 안에 있었다. 짐을 가지러 가야 하나, 짐도 젖으면 어떡하지, 내 버스는 타러 어떻게 나가지, 눈앞이 깜깜했다.
높게 들이친 물 때문에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소방차들이 왔다. 소방관들은 물을 헤치고 카트 같은 걸 가져다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구석에 있어서 꽤 마지막에 구조(?)되었는데, 소방관에게 업혀 나오는 구조였다. 내 발과 다리는 꽤 젖었지만 내 짐이 더 문제였다. 앞으로 남은 여행 일정이 한참인데, 짐을 못 가지고 이동할 수는 없었다. 안 되는 스페인어로 직원에게 부탁하니 여차저차 소방관이 가져다줬다. 기쁜 마음에 짐을 찾으러 뛰어다가는 크게 미끄러졌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젖은 레깅스를 걷어올리기엔 정신도 없고 레깅스도 너무 짱짱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짐이 젖지 않았다는 거였다. 조금 긴장이 풀리니 춥고 배가 고팠다. 길거리에 파는 구운 옥수수를 사 먹고 버스에 올랐다.
운이 좋았던 건 맞는 것 같은데... 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