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7일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칸쿤이었다. 신혼 여행지로도 많이 오는 바로 그 동네. 저렴하게 열흘 이상을 보냈으니, 하루 정도는 나를 위한 정비를 하면서 올인클루시브라는 것도 경험해보자 싶었다.
기대한 건 많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해변에 늘어져서 쉬다가 밥이나 술이나 진탕 먹겠다는 나의 계획에 비해 그곳에 머무르는 나는 생각보다도 훨씬 심심했다. 호텔 안에만 있자니, 생각보다 배가 안 고프고, 나가자니 귀찮고.
그래도 어찌 됐건 내 여행 중 가장 높은 숙박비를 낼 이곳에서 시간을 어찌 되었건 보내보자고 고른 건 해변이었다. 파도 없는, 잔잔한, 모래가 고운 해변. 비취색이 아름다웠지만 혼자 물에 들어가서 수영해서 무슨 재미냐 싶었고, 대충 보니 빙고 같은 걸 하는 것 같으니 나도 한번 껴볼까 싶어 해변 가 소파에서 뭉그적 거렸다.
빙고는 재미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빙고랑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때 하던 빙고는 주제가 있었는데, 그냥 숫자만으로 하는 빙고였다. 그리고 뭘 불러대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어쩌라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빙고 판은 엎어두고 핸드폰을 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 눈알을 굴리다 하며 몸을 뒤척였다.
뒤척일 때마다 뭘 해야 이 무료함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배는 안 고프지만 뽕빼는 마음으로 레스토랑 예약이나 해둘까, 아직 예약 시간이 안 됐네, 그때까지 뭐 하지, 의 생각을 반복했다.
그러던 와중에 웬 남자애가 쭈뼛대면서 다가왔다.
Hi,라는 말로 시작한 내 또래의 남자애는 까무잡잡해서 어디 사람일까 했는데 필리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난 캐나다 사람이었다. 가족 휴가에 따라왔다가 나처럼 심심한 찰나였던 것 같다.
캐나다 하면 할 얘기는 Tim Horton 밖에 없던 나는 그 주제로만 몇 마디 하고는 너무 어색해져 버렸다.
그 친구도 내게 말을 건 용기를 낸 것 치고는 통 숫기가 없었다.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어 이제 방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방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더 요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느릿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걸어오고는 이만 됐다고 인사를 했다.
방에 돌아와서도 별반 새로운 건 없었다. 모래를 씻어내고 에어컨을 빵빵 튼 쾌적한 방에서 Friends를 볼 따름이었다.
어둑해질 즈음에는 코코봉고를 향해 나섰다. 코코봉고는 칸쿤의 유명한 클럽이다.
출발하기 전 마음 만으로는 온 무대를 휘어잡는 망나니,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안의 흥을 발산하는 춤쟁이로 놀고 오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는데, 도착한 나는 그렇게 소심할 수가 없었다.
저 친구들끼리 온 서양언니들처럼 같이 술도 마시면서 흥도 올렸으면 좀 달랐을까, 싶으면서도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흥에 올라 혼자 몸을 흔드는 건 딱히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도 났다.
춤추는 사람들을 조금 구경하다가 그냥 호텔로 돌아온 게 다였다.
내일은 새벽 비행기를 타는 날. 그리고 드디어 페루, 리마로 넘어가는 날. 리마에서는 또 하루 잠깐 보내고 무사히 쿠스코로 넘어가야지. J를 드디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