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한 엄마의 아들을 위해

by 손현란

이날 너는 군대 전역 D-4일이었어.


너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라이브 방송을 켰어.

나는 다양한 이유로 너의 연예계 활동을 별로 지켜보고 있지는 않았지. 그래서 우연히 휴대폰을 들었던 어느 날 밤, “라방 중” 표시가 떴더라. 사실 나는 이 방송을 보고 싶은지 약간 망설였어. 하지만 이게 너의 방송일지, 아님 다른 멤버의 방송일지, 이것 조차도 몰랐고, 그래도 너였으면 나는 너를 오랜만에 전역하기 전에 한 번은 봐야겠다 싶어서 결국엔 눌러봤어. 예상대로, 너였더라.


이쯤에는 라방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행했는지 나는 몰랐어. 진짜 그냥 눈감고 들어온 거였으니까. 들어왔을 때 이미 시청자들은 200명 가까이 있었고, 밑에 댓글창은 마치 마술사가 카드를 섞듯이 눈이 못 따라갈 만큼 빨리빨리 지나가고 있었어. 상황 파악 하기 힘들더라.


라방을 계속 보면서 너는 조금 있다가 전역 얘기를 꺼냈어.

팬들은 나올 때 라방 많이 해달라, 인스타그램 사진 더 올려달라, 블로그도 시작할 생각 없냐, 활동 다시 해달라, 카메라보고 하트 하나 해달라, 이런 댓글들을 많이 쏘고 있었어.


한편, 나는 너에게 바라는 게 없었어.

인제 군대 4일밖에 안 남은 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할 수밖에 없더라. 밖에 나오면 볼 사람들도 많을 테고,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이런 거 참 많을 텐데. 너는 전역 얘기를 하면서 아주 기뻐하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이제 자기만의 자유를 다시 되찾는 순간이라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는 여러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어 - 얘도 드디어 나온다는 게 당연히 좋을 텐데, 얘네 엄마는 어떠실까? 엄마는 자기 아들을 군대 보내고는 일 년 반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그것도 그 북한에 나름 가까운 파주로 갔던 애인데 엄마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우리 엄마는 우리 오빠를 그렇게 군대 보냈으면 오열하셨을 텐데.


얘네 엄마는 어떠실까? 엄마는 자기 아들을 군대 보내고는 일 년 반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그래서 너는 전역 얘기를 계속하면서 나도 댓글 하나 보내봤어.


전송을 누르고 한 2초 있다가, 너는 화면을 빤히 쳐다봤지. 눈 깜빡깜빡 몇 번 하고. 아무 말 없이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입도 약간 열리고. 눈이 빤짝하면서도 뭔가 은은하게 흔들리더라. 그리고는 가 크게 읽어줬어: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


나는 이 수많은 댓글을 사이에 너가 이걸 볼 거라고 어떠한 기대도, 상상도 안 했어. 순간 얼어버렸어. 너도 읽고 은근히 놀란 표정을 지어서 순간 내가 막 당황을 했고, 심지어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 있지. 사실 너도 놀란 만큼 나도 놀랐던 것 같아.

이때쯤 마술사는 카드를 다 섞으셨어. 카드팩을 두 개로 갈라 너에게 한 장을 고르라고 했어.

그리고 너는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화면 정면이 아닌 옆으로 돌리면서, 물을 병에서 잔으로 따르듯이 잔잔한 흐름으로 말을 꺼냈지: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겠다고요?
네, 그쵸.
저희 엄마 요즘 보면, 그래도 같이 있으니까 계속 저 영상만 계속 봐요.
하루 종일.
자기 전에도 저 축제에서 한 것도 계속 보고 하루 종일 제 영상 틀고 있어요.
.....
"자랑스러우셔서" 그쵸?
막 어디 갈 때마다 제 자랑하겠죠?
교회 갈 때 그 집사님들이랑 막….. 자랑하시고…..
네…..


그래. 너는 항상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사람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때 너는 여전히 말수는 적었어도, 얼굴 표정은 너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 할 수 있는 성찰들로 미어터지더라. 너는 아마 모르겠지만, 너가 엄마 얘기를 꺼냈을 때 눈빛만 봐도 머릿속의 다른 곳으로 표류해 버린 것 같았어. 얼마나 그랬으면 얘는 순간 라방하는 걸 깜빡했나 싶었다니까.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너는 그저 연예인이 아니었어. 휴가를 즐기는 한 남자였어. 군대 전역을 기다리는 한 남자였어. 웃으면서, 아닌 척하면서, 사실 자기 엄마 보고 싶었던 한 남자였어.


지구는 서서히 돌아가도, 학교 종은 또 울려도, 지하철은 계속 다니고 영장은 계속 배포돼도, 시간에 면역이 있는 건 딱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우리 엄마들.

우리는 사실 나이가 비슷해. 그래도 우리 둘 다 이 나이가 되도록 우리들은 어쩜 엄마 앞에 다시 한없이 작아지는지 너무 신기한 거 있지. 마치 피터팬의 이야기처럼, 언제 성인이 되었냐는 듯 엄마는 항상 와서 엉덩이 토닥토닥하고, 머리 쓰다듬고, 먹고 싶은 거 뭐 있냐고 물어보고, 과일도 하나하나 깎아서 갖다 주고, 그러지. 아마 우리 엄마들은 우리를 어릴 때 아기로 보고, 나중에 클 때는 그저 덩치만 엄청 큰 아기로 보는 듯 해. 그리고 우리들은 다 크고 이제 독립한 삶을 살기 위해 각자 갈 길을 떠날 때, 우리 엄마들은 속상해하시고, 눈물 흘리고, 그리워하시는 게 아무리 당연하다고 생각해도 죄책감이 드는 건 마찬가지야. 이 무게를 어깨에 메는 거는 우리가 선택의 여지없이 견뎌야 하는 거지. 그래도 이건 부담의 무게가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너무나도 거대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거야. 이러다가 어깨가 빠진다면 그것마저도 감사해야 할 부상이지 않나 싶어.


그만큼 너무나도 거대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거야.


그래서 너는 라방을 끝냈을 때, 그날 어디 가야 한다고 해서 팬들에게 인사를 했어. 물론 어디를 가는지 말은 안 했지만, 아까 너의 반응을 생각하면 인제 오늘 밤에는 엄마 생각을 하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사실 나는 그때 너한테 되게 미안한 마음이 돌아왔어. 내가 괜히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해가지고.


그리고 이 편지를 작성하면서 또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너가 전역하는 그날, 너가 마지막으로 부대 밖으로 발을 내미는 그 순간, 너네 엄마는 두 팔을 내밀며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 해. 그럼 너는 그때부터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한 병장으로 떠나서 한 엄마의 아들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이 글이 올라갈 때 너는 내일 드디어 전역하는 날이야. 너는 이걸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보게 된다면. 축하해. 고생했어. 그리고 혹시 너무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엄마에게 안부 전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