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한 한 삶에게 전하고 싶은 말
2025년 9월 18일. ㅈㅅㄱ 축제의 공식 첮날.
이때쯤이면 너가 팬들에게 마음 아픈 소식이 전한 지 얼마 안 됐을 시기였어. 그만큼 또 갑작스럽게 힘든 상황인지라 팬들이 너에게 사랑을 씌워주고 싶은 마음이 위로의 이불을 덮어주려다가 결국엔 너의 발 앞에 돗자리를 까는 거였더라. 나는 사람으로서, 동갑내기로서, 나처럼 힘들게 살다가 꿈을 이루어서 존경하던 친구 같은 애가 갑자기 순식간에.....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진짜 우상이 되어버렸어. 한때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 SNS에 한번 바이럴 터뜨려주고 싶어서 역대급 엽기 주접글들을 써서 팬들 사이에 사랑받던 존재였던 내가,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팬들의 적이 되어 벼렸어.
사실은 이런 거야 - 나는 너라는 사람을 여전히 사람으로 인정하고 싶었기에, 나는 너 앞에 도저히 무릎을 꿇수가 없어서 골칫거리가 되었던 거 같아. 나는 너를 응원을 해주고 싶었지, 섬기고 싶진 않았어. 이 축제는 그저 축제였지만 어떤 팬들은 예배로 취급을 하더라. 나는 도저히 하나님이 아닌 것은 섬기지 못해서 나락 갔어. 그래서 나는 이 축제에 있는 팬들 사이엔 이미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멀리서 너의 상징 색깔옷을 맞춰 입은 무리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너의 그룹의 노래를 찬송가처럼 부르는 소리조차도 내 속을 울렁거리게 하더라.
나는 너를 응원을 해주고 싶었지, 섬기고 싶진 않았어.
오전에 하던 작은 무대.
무대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어떤 두 군인들이 뮤지컬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그때 갑자기 옆으로 보니까 너가 나타났더라. 너는 거기로 달려와 내 앞에 한 2~3미터 정도 서서 다른 스태프 분이랑 얘기를 하고 있었어. 정확히 무슨 얘기인지는 못 들었는데 너가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거 같아:
어디 있는지 아세요? 보셨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겸손의 무기로 해맑은, 올바른, 예의 바른 대답을 연속으로 쏴버리고는 초고속 스피드로 백스테이지로 뛰어간 너. 그리고 그 이미지를 기억에 지울 수가 없게 된 나.
오전 무대가 끝나고 팬들은 얼른 일어나서 바로 뭔가가 급한 듯이 달려 나갔어. 처음에는 네가 공연팀 버스 탑승하는걸 한번 보겠다고 벌 때처럼 붙어갔다가, 버스가 출발했을 때는 또 오후 무대 현장으로 달려갔지. 2시간 넘게 아직도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왜 그렇게 뛰어갔을까? 그건 바로 그 무대 앞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또 하나의 순례였어.
나는 뛰는 사람들 사이에 혼자 슬그머니 걸었어. 지나가는 여러 종류의 군복도 보고, 전시된 탱크랑 장갑차도 구경했지.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따끈한 콘크리트 위로 걸어 다니는 작은 친구를 마주쳤어. 무당벌레.
줄여서 무당이.
무당이는 항상 나에겐 친구야. 왠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무당이를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했어. 빨간 엉덩이가 실룩실룩 걸어 다니는 게 너무 귀여워서.
무당이에게 내 손가락을 건네줬어. 인간의 덩치가 무섭지 않은 듯 바로 올라탔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말을 걸어봤어:
넌 왜 여깄어? 넌 어디서 왔어? 니도 혼자니? 사실 나도 혼자야. 너 찾고 있는 벌레친구들은 있을 텐데?
1분 정도 놀아주다가 결국 무당이를 한 푸드트럭 옆 잔디밭에 조심스럽게 내려줬어. 아무 일 없었듯이 잔디에 풀잎 하나를 오르기 시작했던 무당이. 그리고 그 이미지를 기억에 지울 수가 없게 된 나.
무당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했겠지: "저 외국여자애는 길을 잃었나? ㄸㄹㅇ인가? 왜 자꾸 지 손보고 혼잣말을 하지?"
하지만 무당이는 내가 없었으면 그냥 팬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무리 밑에 깔려 죽었을 거야. 나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서 어떻게 손을 잡아주게 되었던 거고. 무당이는 대단한 벌레는 아니어도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벌레고, 작고, 귀엽고, 이 큰 인간들 사이에 혼자 있어서 오히려 더 소중하게 보였어. 그만큼 또 내가 한순간 아차 하다가 손을 꽉 쥐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웠어. 내 손은 순간 내 손이 아니라 무당이의 오아시스였지.
그리고 오전 공연 보면서 그 얘기도 많이 엿들었어: "저 사람 누구길래 팬들이 저렇게 진심이야? 연예인? 아이돌이래? 어 그래, 나는 처음 들어봐."
그래서 무당이를 볼수록 너 생각이 나더라.
미친 듯이 달려가서 카메라 꺼내고 소리 질르고 심리적으로 절하듯이 무릎 꿇는 팬들 사이에, 그리고 너가 누군지 모르는데 일단 무대와 팬들을 관람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는 다른 것이 보였어. 그저 한 사람이 보였어. 한때는 꿈이 컸던 만큼 마음이 더 컸던 한 사람. 공부는 별 관심 없고 댄스학원에 올인한 한 사람. 새벽 3시 배달 알바 끝나고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연습실로 가서 자기 친구 울렸던 한 사람. 그래도 쉬는 시간에 한강 소설도 읽을 줄 아는 한 사람. 군대 입대할 때 카메라 앞에서도 자기 엄마 손을 꽉 잡고 훈련소로 들어간 한 사람. 아이돌인데도 한 번도 티 안네고 겸손함과 친근감으로 스태프 한데 대하는 한 사람.
무당이는 내가 없었으면 그냥 팬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무리 밑에 깔려 죽었을 거야. 나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서 어떻게 손을 잡아주게 되었던 거고.
웬만한 사람들은 무당이를 그저 벌레로 보고 말았을 거야. 웬만한 팬들은 너를 그저 잘못할 수 없는 완벽한 아이돌이라고 손 뻗고 섬겼을 거야. 처음엔 내 손바닥엔 무당이가 편하게 앉아있었는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무당이는 너의 인간성이었더라.
높고 거대한 인간이 아닌 작고 소중한 한 삶으로 나타나주던 무당이 같은 너.
그리고 그 이미지를 기억에 지울 수가 없게 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