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빨래를 접는 명상수행에 대하여

by 손현란

어제 오후에 빨래를 했어.

어제는 날씨가 나름 좋았는데도 뭔가 귀찮아서 밖에다가 널지 않고 거실에 널었는데, 어쩌다 오늘은 갑자기 비가 한창 쏟아져서 내가 운이 좋았나 보다.


오늘은 빨래가 다 마른 거 같네. 그래서 나는 빨래를 농작물을 수확하듯이 하나하나씩 주웠어.

너네 동네는 어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여가는 밖에 비는 계속 쏟아져. 빗소리는 내 머릿속 소리랑 비슷하다고 봐. 뭐만 생각이 하나 났다 하면 우당탕탕 주르륵 뚝뚝 시끄럽게 등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래.


나는 비가 오는 날에 실내에 있으면 세상이 더 천천히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창문으로 비 오는 걸 바라보면은 말도, 생각도 모든 게 다 천천히 해결돼. 마치 머릿속에 빨래를 접으면서 차곡차곡 서랍에 넣듯이 생각의 속도를 늦춰서 정리를 할 수 있게 돼. 옷은 옷 대로, 속옷, 잠옷, 양말도 하나씩 자기의 짝을 찾아주고 정리를 해. 빨래를 접는 이런 평범한 작업을 할 때는 뇌 반쪽이 절전모드로 들어가. 복잡한 머릿속은 잠시 잠잠해져. 왜 이러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나마 내가 생각한 미완성된 가설이 하나 있어. 바로, 나는 원래 머릿속이 복잡하고 깊고 빨리 돌아가는데, 내가 하도 머릿속에서 살아서 아마 내 머리 바깥에 그렇게 시끄럽고 정신없는 게 나를 현실로 다시 되돌리는 건가 싶어. 약간 심리적 접지처럼? 그래서 비가 펑펑 내리는 모습이 어떻게 내 머릿속의 복잡함을 상쇄하나 봐.


빨래를 접는 이런 평범한 작업을 할 때는 뇌 반쪽이 절전모드로 들어가.


하지만 비 때문에 머릿속의 세상은 천천히 돌아간다 해도, 바깥세상은 여전히 지가 알아서 빨리 돌아가. 그래서 뇌마저도 밖에 한 번씩은 나가봐야 돼. 머릿속은 하나의 심리적인 방이거든. 그 방에 나가서 세상밖을 경험하지 않으면, 바람 쐬러 안 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면, 몸도 마음도 상하더라.


어떤 사람들의 방은 피씨방이고, 영화관이고, 도서관이어서 평생 머릿속 바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너 방은 무슨 방일까 궁금한 날이 있어. 난 아마 서점인 거 같은데 - 내가 대학생 때 서점 두 군데에나 알바를 뛰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 굳이 편한데 뭘 밖에 나가지? 근데 사실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 그 방은 더 이상 집 같은 방이 아니라 감옥이 되거든. 반복되는 루틴은 점점 지루해지고, 반복적인 의견도 계속 들으면 프로파간다가 돼버려. 그리고 밖을 안 나가면 새로운 게임이랑 영화랑 책들은 어디서 가져와? 그래서 제일 씩씩하고 용감하고 회복력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방에서 자주 외출 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싶어. 그게 바로 성장이니까. 그러니까 또 비 오는 날이 있으면 빗소리 들으면서 한번 생각에 취해봐 - 그러면 지금까지 너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거 같아.


제일 씩씩하고 용감하고 회복력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방에서 자주 외출 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싶어. 그게 바로 성장이니까.


나는 드디어 빨래를 다 접어서 분야대로 정리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손은 무의식적으로 알아서 일을 다 해줬고, 내 속마음도 인제는 세제 냄새날 거 같아. 쌓아놓은 빨래도, 그리고 나의 생각들도, 인제는 서랍에다가 넣기만 하면 돼.

빈 서랍을 열면서 나는 너가 떠올라:

너는 지금 그곳에서 지내면서 무슨 생각하고 살까?

너도 나처럼 이른 아침까지 오만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너는 나처럼 머릿속이 복잡할까?

아님 너는 비 오는 날 무조건 빨래를 하는 그런 친구인가?


지금 비가 잠시 그쳤어. 머릿속은 다시 슬슬 시끄러우려고 하는데, 어제와 달리 나도 바깥세상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빗소리를 흉내 내면서 잠들어볼까 해. 내 속만큼 더 시끄러운 속은 이 세상에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까지는 넌 나를 거부한 적 없었고, 너는 이 벌집의 웅성거림은 언제나 음악으로 들어줬어. 그래서 그나마 그 벌들이 만든 꿀을 너한테 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너는 이 벌집의 웅성거림은 언제나 음악으로 들어줬어. 그래서 그나마 그 벌들이 만든 꿀을 너한테 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일단 서랍은 닫아볼게. 너가 돌아오는 그때, 너 빨래도 우리 집에 가지고 와. 그럼 내가 다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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