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의 정의를 취중진담으로 풀어봤습니다
나는 요즘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내가 받고 싶은 그런 사랑. 내가 아무리 투박해도 사랑은 주는 건 문제가 없는데, 나는 인제 20대 후반이 돼서 무슨 사랑을 받고 싶은지를 재해석한 거 같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앞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아봐 주는지, 이런 거를 다다시 제해석 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왠지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눈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을 발견했을 때, 그 꽃을 바로 따서 집에 가져가 예쁜 화분에 장식하려고 놓는 게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의문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게 진정한 애정인가 싶다. 진짜 그 꽃을 애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 꽃을 소유한다는 것의 생각을 애정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의심의 새싹을 키우는 듯한다.
진짜 그 꽃을 애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 꽃을 소유한다는 것의 생각을 애정하는 것일까.
사실은, 그 꽃을 정말 애정한다면 그 친구를 그대로, 뿌리 깊고 자연스럽게 나타난 그 자체로, 그냥 놔두는 거다. 그리고 매일 지나갈 때마다 그 꽃을 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상하면서 지내는 거다.
이게 진짜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때, 내가 더 순진했던 시절, 나는 오직 사랑이 있다면 그 모든 실현과 문제점들을 참고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사랑은 현실과의 협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의 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좋다고 소리쳐도, 반대하는 엄마랑 친구들이랑 몇 판 싸워도, 나의 일상과 습관들을 맞추기 위해 변경해 봐도, 결국엔 현실이란 돌판에 새겨진 계명들인지라 어떻게 바꿀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사랑의 현실은 그 꽃 밑에 꼬여있는 뿌리들이다. 뿌리가 있는 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고, 뿌리를 잘라내면 바로 죽을 수 있으니까 나에게는 원수이면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다.
식물을 키울 때는 물을 한꺼번에 주면 죽을 수도 있다. 반면, 너무 안 주면 시드릴 수 있다. 그만큼 물을 한꺼번에 주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같은 시간 같은 양을 주면서 키우면 식물이 꽃으로 필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예쁜 실내 화분이 아닌, 밖에서 얼마동안 모든 계절을 이겨내고 아직도 뿌리 깊게 심어져 있는 꽃으로 보이고 싶다. 보이는 그대로 주목받고, 애정받고, 물도 적당히 받고 싶다. 사랑을 받기 위해 왜 굳이 뿌리부터 뜯겨야 된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 억울하다. 나는 이미 땅속에 있는 뿌리를 뽑힌 후 부자연스러운 환경으로 옮겨져 억지로 뿌리를 다시 번식시키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최악의 상황은 아예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죽을 만큼 받는 것이다.
나에게는 최악의 상황은 아예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죽을 만큼 받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스스로 "인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렇게 말은 할 수 있어도, 여태까지 걸어왔던 길은 뒤돌아보면 그래도 시골길이 보이는 게 어쩔 수 없어서 거부할 수가 없다. 내 신발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나의 자서전은 인제 볼펜으로 적혀있기 때문에, 나의 기원을 편집하려는 사람은 결코 쓸모없는 지우개를 들고 뭘 해보겠다는 사람 밖에 안된다. 그래서 나의 뿌리를 다시 번식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진짜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너 같은 사람은 사랑할 시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연애 얘기만 하는 게 아닌다. 물론 애인도, 하지만 가족도, 우정도, 동료들도, 심지어 팬들과 구독자들과의 사이도, 다 각각의 사랑의 종류인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너는 로맨스를 찾는다면, 너는 지금 사랑받는 것과 달리, 너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통틀어서 사람 '너'를 마음의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자신이 있다.
그러니까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내가 심어있는 그곳에 바로 앞에 앉아서 바라봐주는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