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한 한 삶이 경고를 전해준다
2025년 9월 말, 아니면 10월 초 정도였어.
너는 아직 전역은 아직 안 했지만 휴가를 나왔다는 소식을 다른 팬들 채팅방에서 들었어. 그 팬들은 너가 나온다는데 왠지 그렇게 신나서 다 같이 또 놀자고 얘기를 하다가 말고 갑자기:
“우리 걔네 고향 놀러 가야 하나”.
처음에는 그냥 장난 삼아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들 동의를 하면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어.
내가 아무 말을 안 하고 관찰만 하고 있었으니까, 이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계속 얘기를 하면서 자기네들의 생각들만 보고 있던 거지. 이때쯤 나는 방 밖에 이중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 났어. 사실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보고 있던 게 지금은 후회가 돼.
결국 나는 이 꼴을 더 이상 못 참을 것 같아서, 전형적인 변명을 쓰고 채팅방을 나갔어.
너에 관한 게시물은 다 지우고, 계정 삭제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 차단까지 하게 됐네.
이렇게 빨리 짐 싸고 집 가출한 적이 또 있을까.
너에 관한 콘텐츠를 몇 주 동안 안 봤어. 사실 안 보기보단 아예 피해 다녔지.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나는 현생에 집중하기로 결심했지. 한 2주 동안 성공했나 봐.
어느 날, 내가 너의 한 ㅈㅅㄱ 축제 영상을 찾으러 가기 위해 너의 이름을 검색을 했어.
그때 발견했어.
이 사람들이 진짜 계획대로 너의 고향으로 놀라간 거야. 그것도 일부러 가 휴가를 나온 동안. 나름 긴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너의 고향 자랑을 한다고 사진도 올렸어. 근데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너의 초등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는 거야. 호기심에 도 파고 보니, 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 짓을 한 게 아니었더라. 지난번에는 다른 그룹은 너의 고등학교까지 쫓아갔더라고.
물론 이거는 나의 사생활, 나의 개인적인 문제는 아니었지만 화가 났어. 화나 난 김에 친구에게 화풀이 메시지를 보내면서 잠시 위로 봤을 때 한 무당벌레가 창문에 붙어있었어. 오랜만이네 무당아.
하필이면 그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어. 나는 빨리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무당이를 유인을 했을 때 얘는 두려울 것 없이 손에 얼른 올라타줘서 다행이었어. 센 바람에 날아가면 어쩌려고 굳이 내 창문에 붙어 살아남았을까.
내 손등에서 손가락 위로 기어 다니기 시작했어. 내가 너무 집중을 했는지 손에 약간 간지럼을 타기 시작하더라. 언제부터 손에서도 간지럼을 탔지?
언제부터 무당이 들은 다 이렇게 선명하게 붉었었지?
언제부터 무당벌레들은 등에 검은 점들이 각각 달랐지?
내 문제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감정에 휩쓸려가는 거지?
언제부터 무당이 들은 다 이렇게 선명하게 붉었었지?
이 친구를 보면서 그때 ㅈㅅㄱ 축제에서 만났던 그 다른 무당이가 생각이 났어. 그 친구도 얼마나 인상적이었는데. 그때는 거대한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작고 연약해 보였었는데.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더라.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거는 연예인,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
바로 사람의 문제더라.
어떻게 너가 어릴 때 주중 매일 다녀서 공부하던 학교가 신사가 되어버렸고, 어떻게 너가 친구들이랑 놀고 체육대회도 뛰었던 운동장마저도 이제는 어떤 모르는 어른들에게는 성지순례가 되어버렸을까.
진정한 성지순례는 어느 중요한 곳을 가면서 나의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발견하는 시간이지만, 이 상황은 그게 분명히 아니었거든. 이 상황은 스스로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거든. 너를 사냥하러 간 거였어. 이 사람들은 너의 학교 앞까지 찾아온 의미는 너의 어릴 적 모습을 교문까지 바래다주는 게 아니라, 너의 하굣길에 너를 납치해 보려는 게 아니었나 싶었어. 지금 집에 남편이랑 같이 있었을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한다는 것을 알고도 어떤 남자의 옛날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행위는 괴상한 집착처럼 보였어. 그 여자는 자기 아들을 입학 첫날 데려가는 이유는 그저 부모로서의 법적 의무겠지만, 너의 어릴 적 추억 한 구석을 방문하는 것은 그저 자기의 준사회적 욕망의 이유일 뿐이었겠다고 그 생각 밖에 안 들더라.
추억이라는 것은 개인적이고 특별한 거잖아.
추억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기억나는 순간들에 신성함을 주는거거든. 우리가 기억하는 물건이나 장소는 추억이 달려있어야 소중함을 느끼는 거잖아.
추억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기억나는 순간들에 신성함을 주는거거든.
그때 한번 같이 밥 먹었던 추억은 그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같이 먹은 사람 때문에 소중한 거야.
그 한해 생일의 추억은 그날 받은 선물이 아니라, 그때 친구가 초코파이로 케이크를 준비해서 들고 들어오는데 떨어뜨려서 우리끼리 빵 터져서 웃어서 소중한 거야.
학창 시절도 아마 공부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끝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것저것 얘기할 수 있어서 소중한 거야. 그때는 특히 너는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너는 커서 너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너는 그 어릴 때의 소중한 추억을 대중들에게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겠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보고 싶어 안달이 났어. 그게 제일 열받는 사실이지. 그 장소에는 너의 추억이 있고, 그 추억 속에는 너는 여전히 아이이니까.
그 추억 속에는 너는 여전히 아이이니까.
그리고 내 손에 앉아있는 무당벌레는 내가 무당이들을 좋아해서 소중한 게 아니었어.
바로 무당이는 너가 얼마나 그냥 사람일 뿐인지를 알려주는 존재라 소중한 거었더라.
이런 생각을 상징해 줄 수 있는 존재라 등이 더 붉어보였나봐.
무당벌레가 내 손에 이렇게 무겁게 느꼈던 게 처음이었던 거 같아.
나는 원래 감정이 너무 세지면 울지는 않고 오히려 화부터 내는 스타일이야. 다른 상황 같았으면 화를 내지 말고 차라리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어려웠어. 왜냐하면 지금 내가 화를 내다가 손 한번 웅크리면 이 작은 생명은 이 세상에서 바로 삭제되는 거고, 내가 진짜 운다고 해도 눈물방울이 손등에 떨어지면 무당이는 익사해 죽을 수도 있는 거야.
그래서 내 손에 무거움은 내가 약해져서 벌레 하나도 들 수 없던 게 아니라, 이 생명의 무게감이 마침 아령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거 같아. 하지만 이런 무게감에 무너지면 안 되겠어. 너를 위해서라도.
결국 이 사람들은 너를 그저 액자 속의 흑백 사진 한 장을 감상하러 왔지만, 사실 너의 어릴 적 추억은 언제나 천연색 영화 한 편이었다는 것을 알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 색상들은 너의 추억 속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영화는 지금도 신성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살았으면 좋겠어. 이것만이라도 오직 너 거니까.
마치 나의 무당이의 붉은 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