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의 이별길

03:00

by 손현란

새벽 3시에는 깜깜하다. 조용하다. 시원하다. 공부를 한다. 내일 시험 치는데 복습을 급하게 한번 더 해본다. 알바를 뛴다. 연습을 한다. 커피를 마신다. 고민을 한다. 옛날 생각을 유튜브 추천 동영상처럼 구경하고 후회를 한다. 보고 싶으면 안 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밤하늘을 올려본다. 별을 본다. 우주를 생각하면 내가 작아진다.


너 생각을 한다. 너 생각을 할 때는 내 머릿속엔 새벽 3시의 홀로 다니는 산책이다. 평온하다. 아무리 어두컴컴해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


새벽 3시에는 지구마저도 한밤중에 우리 엄마 깨우면 혼나니까 눈치껏 조용히 돈다.


나는 깨달음과 눈싸움을 하다가 진다. 현실이란 휴대폰에 적은 노트처럼 나중에 뭔가 생각날 때 다시 편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출간된 장소설이다. 어느 날 너는 나에게 이 소설을 건네주면서 추천을 해주었다. 이 소설은 그냥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다. 열면 얼굴에 빛을 반사해 주는 책이다. 핸드백 안에 넣고 다니기엔 너무나도 큰 거울이다.


너는 너의 존재 하나로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너는 지금 받는 사랑은 너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너가 정말 마음속 깊숙이 원하는 그 사랑은 이 세상에 찾기 가능하다고. 삽 들고 땅을 파는 사랑, 뿌리가 뜯겨도 상관없는 사랑, 아름다운 꽃밭이 아닌 맨손을 더럽히고 얼룩질게 하는 따듯한 토양인 사랑, 그건 그냥 너의 새벽 3시의 꿈이 아니었다고. 그럴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이런 이야기였다.


나는 그 당시엔 다른 이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4년의 장기연애의 끝은 볼 수 없어서 처음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를 만난 이후로는 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끝이라는 것은 눈앞이 깜깜할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끝은 지구가 노을을 두 손으로 받아주는 수평선의 모습이다.


그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는 대화가 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가 발달되지 않았다. 나는 너가 보여준 미래를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는지, 내가 너무 앞서갔나 보다 싶다. 그와 나는 점점 다른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을 했다. 그가 나에게 4년 기념으로 펜던트를 선물을 줬다. 하지만 펜던트를 줄이 포함되지 않았다. 펜던트는 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뒷목이 무겁고 숨 막히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건네주었던 꽃다발도 냄새를 맡아보니 락스 냄새가 나더라.


그래서 나는 결국 이별을 택하자, 그는 자기 이빨 뒤에 갈고 있었던 칼을 꺼냈다. 하지만 나는 창도 아닌, 방패도 아닌, 그 대신 삽을 들고선 그의 집을 탈출했다.


끝이라는 것은 눈앞이 깜깜할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끝은 지구가 노을을 두 손으로 받아주는 수평선의 모습이다.


밖에 나오고 내 가방에 너무나도 큰 거울을 다시 꺼내보았다. 글씨는 그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이유의 설명서였다. 휴대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서 시계는 오후 5시 17분이라고 표시했지만 내 마음은 새벽 3시였다.


이 새벽 3시는 깜깜했다. 조용했다. 시원했다. 옛날 생각을 유튜브 추천 동영상처럼 구경해도 후회는 없었다. 보고 싶으면 안 되는 사람은 너였다. 저녁하늘을 올려봤다. 구름이 꼈다. 곧 올 달을 생각하면 내 실현은 작아졌다.


너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홀로 다니는 산책을 시작하기 기뻤다. 평온했다. 아무리 어두컴컴해도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었다.


새벽 3시에는 지구는 아직 눈치껏 조용히 돌아갔지만, 나는 그가 들을 수 있게 떠나는 발소리를 성큼성큼 도장을 찍었다. 내 두 손으로 쥔 삽을 땅에 질질 끌고 가면서 콘크리트에 끌리는 소리가 귓속을 바늘처럼 찔렀다.


그냥 너의 새벽 3시의 꿈이 아니었다고. 그럴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이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 그 소리가 멈추는 순간, 나는 그 따듯한 토양의 땅에 도착했다는 뜻일 거다. 그리곤 그 깊은 사랑을 파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발바닥의 도장들은 그를 떠나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사실 너에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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