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앉혀있는 인형

by 손현란

나는 여행 다닐 때마다 맨날 박물관만 찾아다닌다고 주변사람들이 나보고 은근히 재미없다고 놀린다. 사실상 나는 박물관 킬러다. 13살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우리나라 수도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라고 흔쾌히 대답했을 거다. 작년에 영국에서 여행했을 때 나는 쇼핑, 인스타그램 사진, 배경 같은 곳들을 찾지 않았다. 아직 여러 가지 박물관들만 휴대폰에 저장했었다.


나는 역시 해외거주 한국인이다 보니까 한국 역사, 정치, 사회적 문화를 잘 모르고 살아왔다 거 같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국 방문했을 때가 아주 어렸었다. 내가 없던 20여 년 흐른 사이에 한국은 엄청나게 발달되고 바뀌었겠다고 기대했다. 세상이란 건 눈 한번 깜빡이면 어느 한순간에 바뀌는 거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한국 나이로 유치원생이었다. 지금은 내 차의 주행거리계는 앞자리가 바뀌려고 한다.


2025년 9월 초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었다. 이렇게 오래된 시간 있다가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엔 꼭 박물관, 미술관, 기념묘지, 이런 걸 마음껏 보고 가고 싶었다. 나는 본업 직장생활을 하면서 명함을 자주 나누는데, 내 명함지갑은 훈민정음이 적혀있는 걸 들고 다니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해외가 나의 고향이어도, 내가 해외국적 외국인이어도, 나의 정체성의 한 조각은 그래도 대한민국 어딘가에 뿌리 깊게 묻혀있기 때문이다.


너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었다. 나도 이 소설들을 읽긴 했다, 물론 나는 너보다 10년 전에 읽긴 했지만. 특히 너도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고 했을 때, 나는 다시 기억이 났다 - 나는 너무 뭔가 현실적이게 두려우면서 좋아서, 지금도 한국 역사를 더 자주 봐야 한다는 영감을 받았다. 물론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영어로 읽어야 했던 아이러니는 놓칠 수 없었다.


역사라는 건 참 중요하다.

어느 날 회사 사무실에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인터넷에 한국이 국제 헤드라인이 떴다. 우리 회사에는 나만 유일한 한국사람이라서 사무실은 곧 기자회견이 되어버렸다.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독재권? 군대?

계염령?

내 등에 채찍질을 한 녀석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나는 결국 그 고통이 채찍이란 것을 모르고 살다가, 나중엔 내 앞에 있는 후손을 보고 내가 채찍을 들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체 내 등에 새겨진 채찍 상처를 앓고 살게 된다. 이걸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투표권을 받으면 이 꼴이 나는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보고 지루하다, 재미없다, 이런 말 많아한다. 왜 굳이 옛날 거를 자꾸 보냐고 물어보더라.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마치 성경에 하나님의 말을 어기고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처럼 사람들은 역사를 뒤돌아볼 때 굳어버리더라. 하지만 역사는 아무리 불쾌하고, 불편하고, 슬퍼도, 우리는 그걸 보면서 배우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 옛날 있었던 일들은 우리의 현재 생활 속에 스며들어있지 않나 싶다. 마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로 연결한 듯이. 그러니까 과거는 그 마음의 실을 잡아당겨서 우리를 미래로 이끄는 존재다.


과거는 그 마음의 실을 잡아당겨서 우리를 미래로 이끄는 존재다.


너가 그 소설들은 언급했을 때 당시, 팬들도 마찬가지로 그 책들을 찾아갔다고 했다. 연예인이 이런 깊고 어려운 내용을 읽을 줄 안다고 감탄했다. 팬들은 도서관을 찾아가서 책을 빌리려고 노력했다는 게 너의 영향이었다. 그 책들을 못 찾았을 때는 또 오열을 했다. 그 책들이 어디 있지? 왜 없을까? 그 책들이 재밌나? 재밌어서 찾기 힘든 건가? 그러니까 팬들은 그저 네가 읽었기 때문에, 너의 눈길이 갔던 글이었기 때문에, 그저 책 제목에 너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찾아간 것이 않은가 싶다. 즉, 자기 마음의 실이 아니라 오히려 너의 마음의 실을 당겨보고 싶어서 그 줄을 확대경을 들고 유심히 따라간 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형사가 아니라 고고학사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순간, 나에게는 나만의 현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내 머릿속의 기록보관소를 찾아가는 기회였다. 내가 처음부터 그 21살 어린 나이에 그런 내용의 책을 골랐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왜 읽었는지, 그리고도 왜 몇 년 있다가 또다시 찾아서 읽었는지 스스로 탐구하고 싶었다. 다른 팬들은 그 책들을 드디어 찾을 때는 너를 떠오르며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겠지만, 나는 그 책들을 만지는 순간 손이 연못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내 마음의 실이 당겨지는 대로 따라가 내 심장에 실밥 나올 때까지 박물관 실컷 보고 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의 풍부하고 고통스러운 역사가 우리 오촌동생이 자기 애착인형을 들고 다니듯이 손에 꽉 쥐고, 실밥 나오고, 눈알마저 하나 떨어질 때까지 끌고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 성공했다. 2025년 9월 17일 날, 나는 하루를 잡아서 여러 군데를 다녔다. 긴 유리 디스플레이에 전시되어 있는 일반 시민들의 편지들을 읽었다. 그 편지들의 원인이었던 수많은 대통령들의 사진들도 많았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큰 책임감을 등에 업기로 결정하다가 결국 체포된 젊은이들의 사진들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고문 종류들은 백 년 넘게 그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수감자들의 강제 노역으로 생산된 붉은 벽돌 위를 걷기도 했다.


내 등에 채찍질을 한 녀석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나는 결국 그 고통이 채찍이란 것을 모르고 살다가, 나중엔 내 앞에 있는 후손을 보고 내가 채찍을 들게 된다.


사실 나는 채찍을 맞을 각오를 하고 들어간 거였다. 역사의 흔적들을 뒤돌아보고 그 환경을 숨으로 들이마셨을 때 내가 굳어버릴 거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소금으로 변하지 않았다. 대신 인형으로 변했다.

나를 두 손으로 감싸주던 유령의 손은 손톱 밑에 붉은 먼지가 가득 끼어있었고, 그리고 한 손에 연필을 들고 계셨다. 이 분은 채찍을 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바늘을 꺼내셨다. 나를 조심히 붙잡으시더니, 내 마음의 실을 이용해 내 등에 약간 뜯어진 부분을 꿰매서 고쳐 주셨다. 어쨌거나 나는 조상들에게 상처가 나야 한다면, 채찍에 맞는 것보다 차라리 바느질로 찔리는 게 낫다고 본다.


나의 정체성 한 조각을 찾으러 온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 그 조각은 사실 내 마음의 실이었고, 그 실은 그저 내가 쓸 줄 몰랐던 유물이었던 것이었다.


오늘 나는 서점을 들어가 ‘소년이 온다’를 구매하러 찾았다. 이제 세 번째로 이 연못에 손을 담그는 건데. 이번엔 너처럼 한국어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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