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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저녁노을 Aug 30. 2023

(5화)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고 복직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나의 인생을 바꿔준 선배의 한 행동으로 나는 복직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짐을 싸들고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참 단순하고 사람을 잘 믿는 편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던 부모님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한사코 말렸지만 나는 그렇게 또 금쪽이 마냥 부모님 마음에 걱정을 한가득 안겨드리며 올라갔다.


그리고 수만 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거나 곤경에 빠뜨리게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복직하였다.


그렇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고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이다.


다시 복직한 회사와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고, 나의 천성 또한 변하지 않았다. 갈등이나 충돌을 싫어해 반격을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다시 두들겨 맞았다.


복직하기 전 수없이 돌려 본 시뮬레이션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그 사람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줘야 한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괴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비폭력평화주의자가 되기로 했고, 종교는 없지만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어주라’는 교회의 가르침 또한 따르기로 했다.


사실 ‘무기력은 학습된다.’라고 그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명언들을 갖다 붙인 것이긴 했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있었다. 하도 두들겨 맞다 보니 아프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아프긴 했을 것이다. 근데 아프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 한 명 없었으며, 현실이 바뀌지도 않았다.  


세상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원인을 찾지 않았으며, 내가 그 일들을 수습하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됐을까? 저렇게 말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누구와 밥을 먹었더라면? 업무의 공을 누구 앞으로 돌렸다면? 대리기사하라고 불렀을 때 갔다면?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왜 그런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궁극적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크게 두 가지였는데, 


원인 1. 인간에 대한 실망감

원인 2. 업무, 자리, 승진 등 직장 내에서 나의 입지


원인 1. 인간에 대한 실망감은 뉴스를 보면서도 느끼는 감정이라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뉴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견이 있을 필요는 없다.‘


원인 2.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리, 업무, 승진 정도였고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는 그런 것들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릴 적 유기견을 구조해서 키운 적이 있다. 이 녀석은 아무리 사랑과 애정을 주어도 친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 왜 그럴까 생각하며 관련 서적을 많이 찾아봤었다.


개들은 무리에서 탈락되면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죽음을 맞닥뜨리는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사람들에 배척당하면서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무리에서 배척당하면 죽음을 맞닥뜨리는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일종의 실험 같은 거라 해야 하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시키는 대로 그대로 다 해보기로 했다. 그 어떤 불평불만이나 의견을 가지지 않은 채, 그냥 하라는 대로 무저항으로 해보기로 했다.


부서를 여러 번 옮기던, 업무에 대해 무슨 말을 하건, 나는 그 어떤 말도 없이 하라는 대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흔히 말하는 한직이라는 곳을, 그것도 여러 군데 전전했다.


흔히, 한직이라는 곳으로 발령 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 


놀랍도록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 내가 어디서 근무하고 있는지 말할 때마다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귀찮음과 몸이 조금 더 고생하는 정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사람에 대한 실망이란 실망을 한 상태에서 그 어떤 일들도 나를 놀라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일 또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직장에서 친구가 없던 나는 업무나 업무와 관련된 공부에 매진했고, 한직이라는 곳을 여러 군데 전전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남들보다 넓은 시야경험, 그리고 사람들도 얻게 되었다.


묵묵히 내 할 일을 처리하고 지내다 보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고, 그러다 기회가 되어 해외 출장을 여러 번 다녀오게 되었다.


공무원은 다양한 기관들이 주최하는 해외 장단기 연수, 교육, 출장 등 기회가 많다. 해외 출장을 계기로 여러 국제 세미나, 행사 등 담당하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 높은 사람들을 수행하게 되었고 그 높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나의 커리어가 하나씩 쌓여갔다.

 

업무로 바빴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집에도 못 가는 일이 많았다. 내 차는 1년 만에 10만 킬로를 달성했고, 친구들의 결혼식, 가족행사에 나는 어느샌가 당연히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가 오늘인지 내일이 오늘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와중,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가십보다는 나의 커리어를 더 궁금해했고, 어떻게 하면 그 커리어와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직을 전전하던 내가 갑자기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공무원이 되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고, 버티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겨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 공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영광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당신이 어떠한 일을 겪고 있는지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다. 일련의 일들이 생기는 것일 뿐이다. 9년을 버티면서 든 생각은 중간에 그만뒀으면 정말 억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다양한 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살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여러 해외 출장들, 수 없이 맞이한 도로에서의 아름다운 일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인연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난다. 행복 안에서 불행이 생길 수도 불행 속에서 행복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을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전혀 모른 채 그냥 무식하게 버텼지만, 그대로 포기하고 그만뒀더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았을까?


인간지사 새옹지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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