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로미오

1. 기일

by 이도원

오늘은 할머니의 첫 기일이다. 할머니의 빈 방은 오랜만에 가족으로 채워진다. 로미오는 별채의 방문을 연다.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온다. 창문 유리창에 손바닥 크기의 오동나무 이파리가 어른대고 있다. 먼지가 앉은 경대와 테이블과 소파 위에는 먼지가 앉아있다. 벽 쪽에 붙어있는 침대 위로 여름 햇살의 한 조각이 살포시 앉아있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은 여전히 지난해의 것 그대로이다.


어젯밤 바람 소리는 대단했다. 미자이모가 들어와 창문을 닫으며 몇 번이고 잘 닫혔는지 확인했다. 창문의 걸쇠가 헐거워서 바람에 저절로 창문이 열렸고 그 창문으로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방바닥으로 사정없이 쏟아졌고 테이블과 의자 위로 떨어져 흥건하게 적셨다.


할머니의 물건은 그대로 있다. 로미오는 별채만은 빈 공간으로 두고 싶었다. 큰아버지를 염두에 두었고 어쩌면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삼월 봄날인데도 방안은 후텁지근했다. 할머니의 침대를 창문에 바짝 붙였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자줏빛을 띤 목련이 굳게 다문 조개처럼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하루 종일 멍한 얼굴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지 몇 달만 이었다. 할머니는 초원장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을 원했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무슨 말이에요? 할머니 손을 놓으시면 안 돼요. 재가 멋진 소설을 쓰는 날까지.”

“그렇지. 네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모두 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서서히 내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벌써 많은 게 지워졌어.”


할머니의 가래 끓는 소리는 갈수록 심해졌다. 음식을 먹일 때마다 할머니는 그렁그렁 소리를 냈고 나중에는 숨이 멎는 듯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미자이모는 능숙하게 차가운 물을 할머니의 이마에 뿌리고 그래도 깨지 않으면 할머니의 입을 벌려 손가락으로 혀를 눌렀다. 그러자 할머니는 헉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내쉬었고 그제야 미자이모는 긴장이 풀린 듯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진 매일같이 초원장에 와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아니 미자는 왜 그 방에만 있는 거냐? 여기가 이렇게 뒤죽박죽인데. 간병인을 둬. 간병비는 내가 낼 테니. 이참에 대대적으로 공사 한 번 해보는 거지 뭐. 바닥도 대리석으로 깔고 욕실도 스팀시설 기를 들여놓아야겠어. 이젠 본격적인 러브모텔로 다시 신장개업 해야겠다”

로미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할아버지의 말대로라면 곧 대대적인 공사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가 병석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면 할아버지는 여관의 모든 낡은 집기들을 갖다 버릴 것이다. 할머니가 그토록 아끼는 세간도 물론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놓고 미자이모의 간병을 원했다. “고아원에서 데리고 와서 입혀주고 재워주고 했으면 그 정돈해야지.” 미자이모를 겁탈하고 그것을 막았던 큰아버지를 밀어 결국 정신이상자로 만들었던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자신 보다 큰아버지가 먼저 죽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방에 딱 한 번 들어왔다. 할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이제라도 언니에게 사죄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입술을 굳게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그랬다. 문제가 일어나면 회피하거나 남 탓을 했다. 큰아버지가 정신이상자가 된 것도 자신이 아니라 패륜적인 일의 결과라고 했고 아버지 또한 날 때부터 더러운 피를 가지고 태어나서 사내가 사내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은 잘났다고 남편을 무시해서 얻은 병이라고 했고 로미오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소설나부랭이를 쓰는 것도,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해서 그런 것이고 어쩌면 지아비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로미오는 할머니가 숨을 쉬고 있는지 없는지 가슴에 귀를 갖다 대어봐야 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입술은 차츰 보랏빛을 띠고 있고 이제 더 이상 말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단 한 마디도 서로 나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마치 잠결에 가듯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은 큰아버지와 미자이모였다. 아버지는 한달음에 달려왔고 아버지 옆에는 안이 있었다.

할아버진 아버지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 또한 그랬다.

“이 초원장 로미오 앞으로 등기된 걸 이제야 알았어. 이놈의 여편네가 이렇게 손을 쓸 술은 몰랐어. 내가 등기를 해준 게 병신이지. 공사는 접는다. 내 것도 되지 않을 것을 돈들일 필요가 없지. 한 놈은 정신병원에 한 놈은 … 입에 올리기도 더럽지만. 이 놈의 여편네와 저년과 네 아비가 모두 한 패거리인거지.”

할아버지의 만행은 끝이 없고 반성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 단 한 번도 돈을 쓰지 않았던 할머닌 결국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다. 할머니는 수목장을 선택하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진심을 뒤늦게 안 유일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말이 곧 신념이고 행동이었던 할머니를 그제야 안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옆에 묻히길 거부하는 할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넌 부자가 되었구나. 고작 삼십 대 중반에 칠십 대의 재산가가 된 셈이다. 이건 약탈과 다르지 않아. 왜 너만 가져야 하니. 네 할머닌 내게 있어선 씻지 못할 악행을 저지른 셈이 되었어. 나를 자신과 똑같이 허무하고 쓸쓸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게 만들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내게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야. 돈이든 뭐든 남겨주려고 했겠지.”

장례식이 끝나고 엄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로미오는 엄마가 할머니가 묻힌 나무를 향해 극락왕생이 아니라 이런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로미오의 눈빛을 알기라도 하듯 엄마가 로미오를 노려보고 있었다. 로미오는 어느새 탐욕으로 얼굴형과 얼굴빛과 표정이 달라진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꼴이 아니었다. 사람과 축생의 중간형처럼 어리석고 맹목적으로 보였다. 그토록 순하고 여렸던 엄마가 이렇게 변하고 말았다니. 하지만 로미오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곧잘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엄마는 할머니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비굴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만약 다음 생에 태어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래서 또다시 부잣집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다면 , 난 부잣집의 개로라도 태어나고 싶다, 하고 말했던 엄마였다. ‘이럴 바에 좀 일찍 가시는 편이 좋았잖아, 하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엄마에게 할머닌 너무 오래 살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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