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정사진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는 환하다. 큰아버지는 여전히 해말간 웃음을 지으며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미자이모가 큰아버지를 달래 제사상 위에 술잔을 올리도록 했다. 큰아버지는 왼손을 떨면서도 한 손으로 용케 술잔을 떨어뜨리지 않고 술을 올렸다. 이어서 아버지가 올렸고 바람댁이 허공을 보듯 무심한 표정으로 영정을 보고 있다. 미자이모는 큰아버지의 입가에 흘리는 침을 손수건으로 닦아내었고 할아버지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초원장에 오자마자 로미오가 건 장기월세 현수막을 걷은 것이었다.
“내가 리모델링에 투자할게. 이게 뭐냐, 이렇게 좋은 위치에 여인숙이라니 말이 되냐. 빌려준 돈은 벌어서 천천히 갚아. 이자를 톡톡히 받아낼 거니까.”
이에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진 이제 손 떼세요. 아버지 할 일이나 잘하세요. 어머니도 여기 초원장이 어려운 사람들 공간으로 하는 것엔 찬성하셨을 겁니다.”
“이제 네 어미는 없어.”
아버지가 소리쳤다.
“제게 아버지도 없어요.”
몸을 흔들며 소리를 치느라 휠체어가 휘청거렸다. 안이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이제 여긴 내 아들 것이니까요.”
할아버지가 로미오를 바라보았다.
“쯧쯧 같은 처지라고 이제 편을 드는구나. 아이고 우리 조 씨 집안은 완전히 작살났다.”
로미오가 말했다.
“할아버지 이제 다신 여기 오시지 마세요. 제게도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진 없어요.”
“아니 이 놈이.”
할아버지가 당장이라도 로미오의 얼굴을 때릴 듯 주먹을 내밀어 공격할 기세였다.
그때 할아버지의 팔을 잡은 것은 미자이모였다.
“자꾸 이렇게 괴롭히면 저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옛날에 내가 성폭행을 했다고.”
“아니 이 미친년이. 내가 언제 그랬다고. 성공도 못했는데. 저 놈 때문에. 그리고 네년 때문에 소문이 나서 내 체면이 다 구겨졌지. 네 년만 아니었으면 나는 … 자식들에게 이런 취급도 받지 않고.”
그러자 큰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향해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큰아버지의 왼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미자이모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째, 저기 부엌에서 가져온 모양이네. 안 돼.”
큰아버지의 입가에 흰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칼을 쥔 손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할아버지를 찌를 듯한 기세였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형, 형, 그러지 마.”
그러자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 안과 바람댁, 그리고 로미오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그 틈을 타 방문을 뛰쳐나갔다.
“이놈들, 잘 사나 한번 두고 보자. 내가 바로 옆에 터를 사서 멋지게 모텔을 세울 거야. 이 초원장이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두고 보자. 망하면 나한테 넘길 도리 밖에 없을 거다. 너희들을 알거지로 만들 테니 두고 봐. 이 더러운 놈들.”
미자이모가 큰아버지의 곁에 가서 손에 든 칼을 빼냈다. 큰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처럼 아버지를 껴안았다.
그때 로미오는 영정 속의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의 오래된 거울 속에 가족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