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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Aug 24. 2024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기까지

[제9회 여성연극제 서포터스] 연극 '어미의 노래' 

※ 이 연극은 제9회 '여성연극제'에서 공연된 작품입니다.

※ 연극 '어미의 노래'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리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긴 쉬워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너무 어려우며, 자신 또한 자녀를 부모가 되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모를 사랑하진 못한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보상을 바라지 않고도 베풀 있지만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와 책임감이 따르기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매년 나이가 들어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걸음걸이도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들게 된다. 그럴수록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님 곁을 지켜줘야겠지만 그러기엔 내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핑계로 오히려 더 부모님을 찾아뵈지 않게 된다. 그런 나에게 '모성애'란 애써 회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연극 '어미의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는 모성애를 다룬 창작 음악극이다. 


올해 72세가 된 정님은 30대 중반에 주색잡기에 골몰했던 남편과 사별 후, 정님의 기구한 팔자를 그대로 닮아 남편과 이혼한 막내 영애, 아들 진수와 함께 살고 있다. 큰 아들네는 얼마 후 캐나다로 이민 가고, 둘째 아들은 곧 유럽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한다. 그러자 정님은 아들네에게 '매주 토요일 자신을 보러 오면 용돈을 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한다. 정님의 말에 미안해진 두 아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 매주 정님에게 오기로 한다. 


이 작품은 정님 모, 정님, 정님의 딸 영애로 이어지는 3명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님은 생일에도 겨우 나물 반찬이나 먹을 수 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팔자가 드세진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소리꾼으로 살아가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게 된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정님은 세 아이를 힘겹게 길러낸다. 


정님의 딸 영애 또한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다. 정님은 홀로 자식을 키워야 할 영애의 앞날을 걱정하며 이혼을 만류했지만 영애는 혼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있어 행복하지만, 명절에나 가끔 집에 들러 용돈만 주고 돌아가는 두 오빠와 돈만 밝히는 시누이들 그리고 세 식구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는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발걸음이 뜸해진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정님은 '돈'을 미끼로 꺼내든다. 주말에 올 때마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돈을 쥐어주니 마다할 자식이 없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돈을 많이 주니 더 많은 돈이 숨겨져 있을 거라며 집안을 뒤지기까지 한다. 애정과 돈을 뒤바꾼 이 관계는 정님이 치매에 걸리면서 반전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병간호에 보태라며 오빠들이 동생 영애에게 돈을 쥐어주지만 영애는 이를 거부한다. 영애만큼은 어머니의 사랑을 돈과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지금처럼 잠깐이라도 날 알아보기만 하면 돼.  


이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엄마를 닮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영애 또한 정님과 같은 모습으로 늙어갈 것이다.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던 강한 엄마 정님은 점점 작아져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영애는 어린아이가 된 정님을 엄마처럼 따뜻하게 안아준다. 연극에서 말하는 '시대를 초월하는 모성애'는 엄마 정님을 향한 영애의 사랑이기도 한 것이다.


연극 '어미의 노래'에서는 우리 민요와 창작극이 가야금과 해금, 장구의 반주에 맞춰 흥겹고 애절하게 이어진다. 선창과 후창이 만나 하나의 노래가 완성되듯이, 가족과 사랑이란 서로가 만나 함께 어울려야 완성된다는 것을 이 연극에서는 말하고 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흥겨운 민요자락으로 풀어냈던 것처럼 지금 우리네 삶도 한바탕 구성지게 어우러지길 기원해 본다.



※ 제9회 '여성연극제'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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