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여성연극제 서포터스] 연극 '어미의 노래'
※ 이 연극은 제9회 '여성연극제'에서 공연된 작품입니다.
※ 연극 '어미의 노래'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리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긴 쉬워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너무 어려우며, 자신 또한 자녀를 둔 부모가 되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부모를 사랑하진 못한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보상을 바라지 않고도 베풀 수 있지만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와 책임감이 따르기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매년 나이가 들어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걸음걸이도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들게 된다. 그럴수록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님 곁을 지켜줘야겠지만 그러기엔 내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핑계로 오히려 더 부모님을 찾아뵈지 않게 된다. 그런 나에게 '모성애'란 애써 회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연극 '어미의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는 모성애를 다룬 창작 음악극이다.
올해 72세가 된 정님은 30대 중반에 주색잡기에 골몰했던 남편과 사별 후, 정님의 기구한 팔자를 그대로 닮아 남편과 이혼한 막내 영애, 아들 진수와 함께 살고 있다. 큰 아들네는 얼마 후 캐나다로 이민 가고, 둘째 아들은 곧 유럽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한다. 그러자 정님은 아들네에게 '매주 토요일 자신을 보러 오면 용돈을 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한다. 정님의 말에 미안해진 두 아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 매주 정님에게 오기로 한다.
이 작품은 정님 모, 정님, 정님의 딸 영애로 이어지는 3명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님은 생일에도 겨우 나물 반찬이나 먹을 수 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팔자가 드세진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소리꾼으로 살아가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게 된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정님은 세 아이를 힘겹게 길러낸다.
정님의 딸 영애 또한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다. 정님은 홀로 자식을 키워야 할 영애의 앞날을 걱정하며 이혼을 만류했지만 영애는 혼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있어 행복하지만, 명절에나 가끔 집에 들러 용돈만 주고 돌아가는 두 오빠와 돈만 밝히는 시누이들 그리고 세 식구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는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발걸음이 뜸해진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정님은 '돈'을 미끼로 꺼내든다. 주말에 올 때마다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돈을 쥐어주니 마다할 자식이 없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돈을 많이 주니 더 많은 돈이 숨겨져 있을 거라며 집안을 뒤지기까지 한다. 애정과 돈을 뒤바꾼 이 관계는 정님이 치매에 걸리면서 반전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병간호에 보태라며 오빠들이 동생 영애에게 돈을 쥐어주지만 영애는 이를 거부한다. 영애만큼은 어머니의 사랑을 돈과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지금처럼 잠깐이라도 날 알아보기만 하면 돼.
이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엄마를 닮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영애 또한 정님과 같은 모습으로 늙어갈 것이다.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던 강한 엄마 정님은 점점 작아져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영애는 어린아이가 된 정님을 엄마처럼 따뜻하게 안아준다. 이 연극에서 말하는 '시대를 초월하는 모성애'는 엄마 정님을 향한 딸 영애의 사랑이기도 한 것이다.
연극 '어미의 노래'에서는 우리 민요와 창작극이 가야금과 해금, 장구의 반주에 맞춰 흥겹고 애절하게 이어진다. 선창과 후창이 만나 하나의 노래가 완성되듯이, 가족과 사랑이란 서로가 만나 함께 어울려야 완성된다는 것을 이 연극에서는 말하고 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흥겨운 민요자락으로 풀어냈던 것처럼 지금 우리네 삶도 한바탕 구성지게 어우러지길 기원해 본다.
※ 제9회 '여성연극제'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