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변리사]의 지식재산 이야기
지식재산(IP)과 자산유동화, 제도권 내에 연착륙 중
치열한 축구 경기에서 1cm의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상대편 골대를 향해 뛰어가는 손흥민 선수에게 조금만 패스를 늦게 한다면 골망을 흔들었던 골은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
'오프사이드(off-side) 반칙'이라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룰이 없다면 모든 공격수는 뛰지 않고 상대편 골문 앞에서 패스 기회만 노리게 될 것이다. 열심히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것보다 골대 앞에서 발 밑으로 전달되는 공을 기다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박진감 넘치는 축구 경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오프사이드 룰은 공격수에게는 번거로워 보이는 규칙이겠지만, 축구라는 게임의 박진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골대 앞의 수비수에게는 공격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수비 라인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여 경기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주기도 한다.
적절한 룰 세팅이 필요한 이유이다.
엄격한 규칙은 스포츠 본연의 즐거움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관중의 요구에 따르거나 축구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하여 규칙을 조정하기도 한다.
스포츠의 룰은 조금씩 바뀌며 현대 축구에 최적화되어 왔다.
금융 업계에도 시대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모습이 보인다.
최근 법 규정이 바뀌어 '지식재산권'도 자산유동화의 대상 자산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문화되었다.
2024년 1월 12일 시행되는 자산유동화법 개정안은 (i) 자산보유자 요건을 완화하고, (ii) 유동화 대상자산을 확대하며, (iii) 투자자를 위한 정보공개 의무를 도입하는 등의 많은 변화가 담겨 있다.
종래의 법규에는 '채권ㆍ부동산 기타의 재산권'을 유동화자산으로 정의하고 있었지만, 개정법은 '지식재산권'도 유동화자산의 한 종류에 포함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지식재산권은 무형적인 자산 가치를 가지고, 로열티나 소송 프로젝트 등으로 다양한 현금흐름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동화가 가능한 자산에 해당한다.
최근 지식재산권의 조각 투자가 활성화되고, 기존에 주목받지 않았던 무형자산이 자산 시장에 큰 역할을 하면서 기존 제도를 시대의 변화에 맞추는 움직임이다.
자산 유동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길을 열어주면서도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조치를 함께 정비하는 균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자산유동화'는 자산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하고, 보유 자산을 현금화(유동화)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기업이 축구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매 시즌 축구 경기의 티켓 수익을 얻거나, 경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K-POP 공연 등으로 다양한 부동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업이 하고 싶다면 경기장을 1000억 원을 넘는 가격에 다른 기업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당장에 팔 생각이 없는데 급하게 현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파트를 사고파는 것과 달리 대형 자산은 팔고 싶어도 쉽게 팔 수 없는 제약이 있다. 수천 억을 지불할 의사를 가진 거물급 기업을 찾아야 하고, 길고 긴 협상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찾아다녀도 쉽게 자금을 융통하기도 어렵다. 경기장을 담보로 대출을 해달라고 요청하여도 은행 지점은 큰 자금을 빌려주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담보를 회수하여도 경기장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다시 처분하는 상황을 리스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래 금액이 크거나, 거래가 어려운 상품의 경우에 자산 소유자는 '자산유동화'라는 금융 상품을 활용함으로써 자금을 쉽게 융통할 수 있게 된다.
1000억 원 자산가치를 가지는 경기장에 대한 권리를 조각내고 1만 명에게 투자를 받는 상품 구조를 설계하면 거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원리이다. 보유 자산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하게 된다면 만 원짜리 주식하나를 사고파는 것처럼 쉽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기업은 현금화가 쉽지 않은 자산을 기초로 '자산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을 발행함으로써, 증권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고, 이는 자산을 유동적인 재산을 바꿀 수 있도록 해준다.
보통은 자산을 보유한 기업이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직접 발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은행과 같은 전문 회사를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산유동화의 방법은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자산유동화법에 따라 유동화전문회사가 자산유동화의 방법으로 발행한 증권(예: ABS, MBS 등)은 '등록유동화증권'으로 분류되는 유동화증권의 일종이다. 상법 등에 따라 특수목적기구가 자산유동화에 준하는 방법으로 발행한 증권(예: ABCP, AB 사채 등)은 '비등록유동화증권'으로 구분된다.
2024년 1월 2일 기준 유동화증권 발행 잔액은 각각 196조 원, 145조 원 규모에 달한다.
자산유동화법에 따른 자산유동화 방법이 대표적인 자산유동화 방법이다.
자산보유자가 유동화 자산을 유동화전문회사에 양도하고, 유동화전문회사가 유동화 자산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며, 유동화자산 관리, 운용, 처분에 따른 수익으로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이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지식재산권의 경우 IP의 적정가치를 파악하고, IP가 가진 수익 잠재력을 평가하여야 하는 것이 거래 비용을 높이고 거래를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IP 매매를 하기 위하여 IP의 잠재가치를 파악하고, IP 소송으로 수익을 얻기 위하여 특허 문서를 탐독하고 시장에서 인정하는 IP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식재산권에 기초한 자산유동화도 등록유동화증권과 비등록유동화증권 형태를 활용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저작권이나 특허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저작권료에 따른 수익이나, 특허권에 기초한 로열티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수익증권 발행으로 비즈니스모델을 변경한 뮤직카우 상품은 저작권료 수익을 IP 평가의 요소로 활용하고, 이러한 IP 평가에 기초하여 옥션 시작가를 산정하여 IP 조각투자를 위한 허들을 낮추고 있는 대표 사례이다.
IP를 하나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IP 자산가치나 IP 수익가치에 대해 조각 투자를 시도하고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화웨이는 2022년 한 해에만 특허 로열티로 7000억 원을 얻었고, 수많은 기업들이 매년 수백억 대의 소송 배상금을 지급하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IP에 기초한 자산 유동화는 이렇게 대규모 IP 수익화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조달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와 같은 IP를 창출하는 것에서부터 로열티에 기초한 수익화까지 자금 조성을 위한 유용한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 손인호 변리사. Copyright reserved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