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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bank Jun 28. 2017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지도

스탠드 테이블로 보는 디자인

토스터는 단지 토스터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보여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상품의 탄생, 그리고 디자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 소개된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하비 몰로치(Harvey Molotch)는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주목했던 세상을 바꾸는 상품, 그리고 그런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상품과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추측하는 것처럼, 이제는 한 시대의 상품과 그 상품의 디자인이 특정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품의 디자인으로, 당시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와 얻고자 하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카테고리의 물건이 변화해 온 모습은, 분명 라이프스타일의 변천사를 훑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디자인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사용자 요구의 변화는 물론, 기술의 진보 등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디자인은 아마 지금까지의 변천사 중 가장 진화된 형태일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지속되어 온 디자인이라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모릅니다. 20세기 디자인이 21세기에도 생존하려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디자인의 진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입니다.


퍼시스의 높이 조절 데스크 / 출처: 네이버캐스트

이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디자인의 진화를 ‘스탠드 테이블’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등학생 때, 수업시간이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실 맨 뒤로 나가 서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거나,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대부분 사물함에 엎드려서 필기를 하거나 벽에 불편하게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문제가 학생회의 시간에 논의되었고, 교실마다 흔히 키다리 책상이라고 부르는 스탠드 책상이 2개씩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일반 책상과 모양은 똑같은데 다리만 껑충 길어진 스탠드 테이블은 처음에는 그 모습이 괴이하게 느껴졌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이후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스탠드 테이블은 사무용품으로써 더욱 발전된 디자인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테이블의 핵심은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근무하는 것입니다. 장시간 앉아서 일을 하면 소화도 안 되고 다리도 저리며 허리도 아프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진화시킨 디자인이 바로 이 새로운 책상입니다. 몸이 뻐근하거나 불편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자세를 바꿀 수 있으니, 신체 건강에도 좋고 업무 집중도와 효율성을 끌어올리는데도 효과적인 것입니다.
1953년 영국 의학전문지 <란셋(Lancet)> 등에서는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행태를 “새로운 흡연(The New Smoking)”이라 규정하며, 사무실에서 될 수 있는 한 ‘착석’의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복지의 왕국 덴마크에서는 하루 3시간 이상 서서 일을 하는 것이 집중력과 업무 효율성, 신체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끼친다는 의학계의 자문을 근거 삼아 스탠드 테이블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 조항까지 마련해 이미 90%가 넘는 사업장에서 스탠드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퍼시스의 높이 조절 데스크 / 출처: 네이버캐스트


한국에서는 사무 가구 전문 브랜드인 퍼시스(Fursys)가 높이 조절 데스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목 상판과 철제 다리를 결합한 제품으로 양쪽에 제법 큰 서랍을 ‘장착’하고 있는데,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표준 체형을 고려해 책상 높이를 650~1,100mm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버튼만 누르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높이로 세팅할 수 있습니다. 책상 한쪽에 칼로리 소모 디스플레이 창을 장착해, 서서 일하면서 어느 정도 운동 효과를 보았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퍼시스의 손 으뜸 사원은 “높이 조절 데스크의 수요는 국내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로 최근 한 출판사에서는 100여 명 직원의 사무용 책상을 스탠드 데스크로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스튜디오(UN Studio)와 프로오프(Prooff)가 함께 선보인 ‘스탠드 테이블’(Stand Table) / 출처: 네이버캐스트

스탠드 테이블이 세계적 트렌드가 되면서 최근에는 그 디자인에 또 다른 변화와 혁신이 일고 있습니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것은 기본. 세계적 건축가 그룹도 합류하고 있으며, 유명 디자인 가구 브랜드에서는 스탠드 테이블 자체가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느껴지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2015년, 네덜란드의 스타 건축사무소 유엔 스튜디오에서는 네덜란드의 대표적 가구 브랜드인 프로오프와 함께 ‘스탠드 테이블’을 선보였습니다. 저마다 높이와 모양이 다른 3개의 몸체가 원통형으로 맞물린 디자인으로, 각 면을 목재와 열경화성 합성수지, 다양한 패턴의 패브릭으로 마감해 입체적 느낌을 주며, 여러 개의 저마다 노트북 등을 놓고 편하게 작업할 수 있어 미팅이나 회의 때 특히 효율적입니다. 몸통 한쪽 면에는 안쪽으로 공간을 두어 책이나 기기 등을 수납하도록 했습니다. 유엔 스튜디오 측은 “사무실은 물론 호텔 로비나 공항, 도서관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90cm, 100cm, 110cm의 서로 다른 높이로 각 면을 구성해 서로 키가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미팅을 하기에 좋다”고 밝혔습니다.


좌: 스탠드 얼론 , 우: 오프사이즈 / 출처: 네이버캐스트

프로오프에서 소개하는 스탠드 테이블은 그 기능과 디자인으로 사무실에 생기와 재미까지 불어넣고 있습니다. ‘스탠드 얼론’은 일종의 ‘프라이빗 존’으로, 뒷면과 옆면을 원만한 곡선 형태로 막고 안쪽 가운데 부분에만 평평한 받침대를 두어,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전화를 하거나 문서 작업을 할 때 특히 유용합니다. 매력 포인트는 역시 디자인으로, 전면을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한 데다 색깔도 다양해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책상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해 벽에 붙인 ‘기둥’에 몸을 기댄 채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 ‘오프 사이즈’ 제품도 신선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최근 혁신적인 디자인의 테이블이 계속해서 나오고 꾸준히 진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테이블이 생산성과 효율성, 건강과 행복 등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직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용은 물론, 기업체에 소속돼 있지 않은, 프리랜서 라이터, 소설가 또는 학생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기능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이러한 책상은 오랫동안 즐겁게 일하기 위한, 든든한 자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를 혼돈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 속성과 지향하는 가치 등에서 ‘예술’과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디자인은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요구됩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남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사고, 시각으로 '남달리' 표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므로 창작활동의 프로세스가 굳이 체계적일 필요가 없고 창작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이자 예술이고, 비정형적이어서 같은 작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디자이너의 창작활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감'과 '소통'의 개념입니다. 덧붙여, 경제적 가치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디자인의 창작과정은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있어야 하고, 트렌드, 사용자, 경쟁제품, 기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리서치와 포지셔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예술적 감각과 창의적인 사고가 더해져 디자인 개발, 생산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탁월한 디자인이라도 너무 비싸거나 팔리지 않는다면 훌륭한 디자인이라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디자인의 주체로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용자, 소비자 측면이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예술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을 주는 반면, 디자인은 새로운 트렌드,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자의 선호도는 점차 감소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됩니다. 또한, 최근 각광받는 '서비스디자인'처럼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술가의 창작은 개인의 주관적인 세계를 표출해 내는 것이지만, 디자인은 사회와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디자인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 서비스에 가치를 더하고 변화와 발전을 시각화하는 Innovator(혁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스탠드 테이블의 혁신적 디자인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유행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그에 알맞은 실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함으로써 만들어진 좋은 디자인의 예입니다. 앞서 디자인은 예술과 차이점이 있다고는 했으나, 사실 이 둘을 억지로 떼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통한 산업화에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혁신적 디자인은 우리의 현재를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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