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몸을 향한 의자, 바리에르(Varier)
간혹 가구매장에 가면 안마의자나 인체에 맞게 설계되었다는 의자에서 쉬어가고는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왜 디자인이 하나같이 비슷하지? 몸에 좋은 약은 다 쓰다더니, 몸에 좋은 의자는 다 투박하게 생긴 건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이 독특하고 예쁜 의자들을 찾아보면, 순전히 디자인에만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렇게 디자인적으로 우수하면서도 인체에 적합하게 설계된 의자를 찾던 중 알게 된 것이 이번에 소개할 노르웨이 브랜드 바리에르(Varier)입니다. 현재는 모방품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바리에르는 자신만의 철학을 유지하지만 계속해서 변화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의자에 직각으로 앉으면 척추의 곡선이 없어져 근육이 긴장하고, 디스크에 압력이 가해진다. 120-135도의 승마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더 중요한 것은 앉았을 때 무릎을 꿇어 허리의 자연스러운 S자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1976년 덴마크에서 열린 한 의료학회에서 덴마크 의사 A C 만달 박사의 ‘호모 세덴스(Homo Sedes: 앉아서 생활하는 인간)’ 연구 논문 발표가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술렁이며 자리를 떴습니다. “의자에 앉을 때 무릎을 꿇으라고? 저 의사 완전히 돌았나봐!”라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심 끝에 발표한 연구 논문이 학계의 심한 비판을 받자 상심한 만달 박사는 제품 개발을 접기로 합니다. 대신 자신과 의견이 같았던 측근인 디자이너 피터 옵스빅(peter Opsvik)에게 최적의 의자 설계도를 건네게 됩니다.
명품 유모차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옵스빅은 1976년 만달 박사의 인체공학적 설계를 접목한 ‘배리어블 밸런스(Variable Balance’를 출시하게 되고, 이것이 노르웨이의 의자 전문 브랜드 ‘바리에르(varier)의 시초입니다.
단순한 원목의 곡선형 지지대, 엉덩이와 무릎 받침대가 전부였지만 1980년대 유럽과 미국을 강타하게 됩니
다. 척추 질환을 앓는 환자나 성장기 어린이를 위해 병원과 학교에서 주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현재까지
‘배리어블 밸런스’는 여전히 스테디셀러입니다. 2011년 기준, 바리에르는 세계 40개국 1400여곳에 수출해 연 매출 2800만달러(약 298억원)를 올리는 글로벌 의자 전문 기업이 되었습니다.
바리에르는 지금까지 총 17종의 의자를 선보였습니다. 각각 새로운 디자인을 강조했지만,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다음의 원칙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몸은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한 자세로 오래 있게 하지 말라’ 였습니다. 바리에르는 ‘변화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자의 바닥 면에 곡선을 넣거나 의자가 360도 방향으로 15도씩 움직이도록 설계되었고, 그래서 흔들의자처럼 자연스럽게 가볍게 좌우로 흔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앉은 채로 앞뒤 반동을 주면 4, 5번 요추를 자극해 허리 근육과 인대가 강화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바리에르는 ‘배리어블 밸런스’의 인기가 채 식기도 전에 1983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제품을 선보였는데,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그래비티(Gravity)’였습니다. 각도에 따라 무릎을 꿇듯이 앉게 되는 1단계, 바닥과 거의 수평이 되는 4단계까지 응용이 가능합니다. 4단계에서 눈을 감고 1분이 지나면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것 같은 상태를 느끼게 되고, 3~5분 이내에 잠들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이 의자는 완전히 뒤로 젖혔을 때, 심장보다 발이 더 위에 놓여 빠른 시간에 뇌에 혈액을 공급, 극한의 휴식을 경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옵스빅은 “의자에 앉는 사람이 최대한 다양한 자세로 변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자인의 목표”라며 “오랜 관행 같았던 전형적인 앉는 자세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병원과 학교에서 인기를 끌던 바리에르는 주방에서 사무실, 거실까지 영역을 넓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홈 바에 어울릴 것 같은 긴 외다리의 의자 ‘무브’는 주방에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높이 조절은 물론 360도 회전이 가능한 데다 초경량으로 설계했고, 앉았을 때 130도 각도를 유지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 의자는 등과 배 근육을 강화해주는 기능을 내세웠습니다. 너무 경사진 의자에 적응하기 힘든 노년층을 위한 ‘액틀럼’도 출시했습니다. 125~130도인 다른 의자의 각도와 달리 115도의 각도를 유지시켰고, 휘어진 다리받침은 안락함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몸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배리어블 밸런스’의 구조에 어깨와 등받이를 추가한 ‘댓싯’은 사무실에서 환영 받았습니다. 1992년 출시한 이 의자는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회사의 매출을 견인한 효자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에르는 분명 디자인의 경계를 없애고 창의적인 제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두 명의 수석 디자이너가 있지만 외부의 아이디어도 적극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리에르는 디자인의 변신을 꾀하면서도, ‘앉아 있으면서도 몸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인체공학적인 의자’라는 본질은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의자에 대한 통념에 도전해 온 옵스빅은 “혁신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새롭고 실험적이라고 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이 거기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쓰는 사람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디자인이라면 혁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보통의 의자들이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에 신경을 쓰며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전략을 도출해 낼 때, 바리에르는 ‘자유로운 몸’을 향한 본질을 바탕으로 제품을 창조를 하고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바이에르는 ‘사람의 자유로운 몸’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했고, 그 본질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국내기준 의자 판매가격이 100만원 ~ 700만원으로, 고가의 제품이지만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건강, 특히 척추건강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매출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명성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