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방의 공돌이 May 29. 2023

인생의 의미는 모르겠고

한라산이 올려다 보이는 제주도 첨단과학기술단지에는 많은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대부분 소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바이오, 푸드, 코스매틱, IT, 신재생에너지 등 업종도 다양하다. 모두가 알 만 한 IT 대기업 본사도 있지만 수백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서울 삼성동이나 판교에 즐비해 있는 것과 같은 규모는 아니다. 큰 기업을 유치하여 지역경제 활성과 고용 창출 성과를 내야 하는 제주도와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이 필요한 기업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지만, 기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유치가 불가능한 제주에는 “대기업 본사”라는 이름만 존재하고 핵심 부서와 인력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한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도내에서 나름 큰 규모이고 기술과 영업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분간 회사가 망하거나 어려워질 걱정은 없다는 안정감이 든다. 이런저런 불만이 있음에도 이직하지 않는 이유다.


경영자는 무능력이 가장 큰 부도덕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의 무게가 너무도 절실한 지방 중소기업은 노동법 잘 지키고 돈 잘 버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직장을 떠나 제주도로 귀촌한 12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부품처럼 취급되는 것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도시는 마치 자본과 인간의 욕망을 뒤섞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철조망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내 힘으론 도저히 뚫고 나갈 길 없는 철조망 말이다.


시간이 지나 나는 친기업 성향으로 전향하여 자본가의 편에 선 중년이 되었다. 매일 생존의 기로에 놓여 불안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경영자의 힘겨운 시간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뜻이다. 사용자는 사용자의 십자가를 지고 살고, 피고용인은 피고용인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법이다. 100세 시대의 비극이 현실이 되어 비참한 노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안내한 방향 전환이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이라는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어 탈직장을 감행했던 12년 전과는 반대 방향의 기차에 올라탄 것이다.


좀 더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저런 거 생각 않고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겠다는 뜻이다.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노인이 되어도 계속 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적은 하나다. 그저 병원비 걱정 없고, 마트에서 망설이지 않고 제철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30대엔 그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연금과 연금저축은 소액이나마 지급되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걸로 겨우 쌀이나 살 수 있을 것이다. 젊을 땐 노년의 삶을 걱정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서 먼 미래의 불행이 또렷하지 않다. 지금은 나의 선택이 안내할 나의 노년이 비교적 선명한 이미지로 보인다.


일만 하면 인생의 의미는 어디서 찾느냐고? 인생의 의미? 그런 게 중요한가? 사실 인생에 거창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제주에 왔다. 10년 동안 충분히 찾아 다녔더니 이제는 지겹다. 이제는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마트에서 망설이지 않고 제철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삶이면 되지 않을까. 인생의 의미는 모르겠고, 망설이지 않고 제철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중년의 전략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