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프랑스인들에게 물들지 말아야지!
프랑스에 지내다가 스페인, 포르투갈처럼 남부 유럽으로 가면 무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더 친절하다는 기분이 든다. 같이 여행을 간 일행들에게 “사람들이 뭔가.. 프랑스보다 더 좋지 않아?” 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열에 아홉은 “맞아, 맞아.”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나는 이게 날씨와 관련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햇볕이 따뜻하고 날씨가 좋은 곳이라 사람들이 더 마음이 편안한가보다 하고. 그런데 이번 봄에 다녀온 코펜하겐 여행의 쌀쌀한 강바람은 나의 ‘날씨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해주었다.
파리와 우리나라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 드 프랑스 (Ile de France)를 연결하는 기차, RER을 타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자잘한 문제가 있었다. 분명 기차를 탈 때도, 기차 안에서도 종점이 샤를드골 공항 제2터미널인 것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1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지난 2년간 프랑스어보다는 눈치가 더 늘었기에, 나는 우선 사람들을 따라 내린 뒤,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띄엄띄엄 이해한 바로는 기차의 종점이 1 터미널로 바뀌었고, 2 터미널로 가려면 셔틀 트레인을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동선 변경으로 혹시나 비행기를 놓칠까 다급해진 마음에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가 셔틀 트레인을 찾았다. 국제 공항에 가는 기차가 멈췄는데 영어 안내 한 번이 없다는 것도 이제 그러려니 싶었다.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관광객들에게 더없이 친절했던 덴마크 사람들이었다. 특히,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다녀온 날에는 유독 낯선 이들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도착한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자연과 미술의 조화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건물의 뒤쪽 출입구로 연결된 정원에는 현대 미술 조각상들이 산책로를 따라 자리 잡고 있었고, 내리막 경사가 진 들판을 지나서는 하늘과 바다가 평화로운 배경이 되어주었다. 미술 작품도 미술 작품이었지만 우리는 정원에 더 시선을 빼앗겨,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는 마치 세상의 끝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해안가의 부둣가에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미술관 폐장 시간이 한 시간쯤 남았을 때야 우리는 아직 다 보지 못한 전시관을 둘러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조형물까지 보고 미술관을 나오는데, 줄을 서있는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물방울 무늬 패턴과 호박 조형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 미술 작품인 Gleaming Lights of the Souls 관람을 위한 줄이었다.
이 작품은 주제를 표현한 밀폐된 방 전체로 이루어졌는데 한 번에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4명, 관람 시간은 1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 작품 앞에만 관람을 기다리는 줄이 생기는 것이었다. 줄이 빠지는 시간을 대충 짐작해보았을 때 시간이 꽤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망설이다가, 그래도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니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줄 끝으로 발을 옮겼다.
무표정의 남녀가 서로의 뺨을 때리는 기이한 행위 예술 영상이 자그만 TV 스크린을 통해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복도를 가로질러, 드디어 3-4번만 지나면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 때 즈음 검은 보호복을 입은 보안 요원이 나타났다. 나와 친구는 ‘제발 우리 앞에서 줄을 끊지 말아주세요’ 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보안 요원을 쳐다봤다.
“여러분, 이제 15분 있으면 미술관은 문을 닫습니다. 여기 줄을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관람 제한 시간을 꼭 지켜주세요.”
그런 사려 깊은 말을 들었는데,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같이 작품방으로 들어온 뒤의 두 분과 앞, 뒤로 자리를 바꾸어 가며 거울로 된 벽, 물이 채워진 바닥, 고차를 두고 설치된 색색의 알전구로 가득 찬 방 안을 둘러보고 1분이 되기 전에 작품을 나왔다. 이미 폐장 분위기가 나는 미술관을 걸어 나오면서, 모쪼록 줄 서 있던 사람들 모두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불친절에 익숙해진 우리는 코펜하겐으로 돌아와서도 ‘덴마크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을 복기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 날 아침 기차표를 살 때도 역무원 분께서 기차 출발 시간이나 승강장 위치, 이번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몇 시고 또 어느 승강장으로 바뀌는 지까지 스크린 모니터를 보여주며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었다. 또,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기차의 기관사 아저씨는 얼마나 친절했던지. 코펜하겐 중앙역이 종점이 아니라서 하차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과 넓은 기차역에서 공항 철도를 타러 가는 길까지. 코펜하겐 중앙역에 익숙지 않은 승객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덴마크어와 영어 안내 방송으로 찬찬히 설명해주셨더랬다.
여행은 원래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만, 이 코펜하겐 여행은 유독 더 그랬다. 프랑스의 관공서나 직장에서 사무 처리를 하다 보면, 자신의 업무 영역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나서주지 않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좌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나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식에 적응해야 했고, 나도 모르게 점점 ‘알아서 하겠지 뭐.’ 라는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프랑스에서 자주 쓰는 말 중 Je m'en fiche. / Je m’en fous. 라는 표현이 있다. ‘난 신경 안 써. 상관없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행동을 개의치 않는 프랑스인들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분리할 줄 아는 프랑스의 사고 방식에 장점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프랑스의 워라밸도 조직과 나를 끊어낼 줄 알기에 가능하고, 그만큼 나와 타인의 개성에 관대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코펜하겐에서 깨달은 건 나는 다른 사람의 곤경을 상상할 줄 아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는 거다. 나는 혹시나 여행객이 길을 잃고 헤맬까봐 이런 저런 정보를 더해주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스카프로 입을 가리며 당황해하는 사람에게 여분의 마스크를 나누어 주고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날이 선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빛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처럼, 따뜻한 덴마크인들의 햇살 같은 친절함이 ‘받는 것이 없으니 주지도 않겠다’는 발상은 내 마음만 더 삭막하게 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샤를 드 골 공항에서 파리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RER 기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면서 이번 여행의 결론은 내렸다.
‘가끔은 쓸데없는 오지랖이 되더라도 친절한 사람이 돼야지. 더 이상 프랑스인들한테 물들지 않을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