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은 떠나는 일이 아니라, 가까워지는 일
여행이라는 말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낯선 도시, 새로운 풍경,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자유. 하지만 이 여행은 조금 다르다. 멀리 떠나는 길이 아니라, 오래 살아온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이다. 풍경을 바꾸기 위한 이동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이다. 그래서 이 여정은 화려하지 않다. 비행기 표도, 호텔 예약도 필요 없다. 다만 천천히 걸으며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면 된다.
“부엌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가까워진다.”
“살아낸 자리에는 온기가 남는다.”
“진짜 동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잊히지 않는 이야기다.”
이 문장들을 읽다 문득 나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나는 늘 일하느라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지만, 엄마는 평생 부엌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새벽부터 불 앞에 서서 밥을 짓고, 김이 오르는 냄비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했고,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는 것이 엄마의 인생처럼 보이던 시간들. 엄마의 하루는 늘 부엌에서 시작해 부엌에서 끝났다. 그곳은 엄마의 일터였고, 엄마의 삶이 머물던 자리였다.
살아낸 자리에는 정말 온기가 남는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남긴 시간의 결이 공기처럼 남아 있는 것처럼. 엄마가 서 있던 부엌 자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곳엔 엄마의 손길과 숨결과 말없이 건네던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자리가 엄마의 여행지였고, 엄마의 세계였고, 엄마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젊을 때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고, 더 빨리 가려고 서두르고, 더 멀리 가야 성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 덜 가져도 괜찮고,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가까운 풍경이 더 소중해진다. 시간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더 얹어 주기보다 조금씩 덜어내는 법을 가르친다. 욕심을 덜고, 속도를 덜고, 괜한 비교를 덜어내는 법을. 그리고 그 자리에 나를 남겨둔다.
기억은 풍경이 되고, 풍경은 다시 삶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여행지는 도시가 아니라 마음이고, 목적지는 타인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다. 우리는 평생 많은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돌아오게 되는 곳은 언제나 나의 자리다. 나를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사람, 나를 가장 오래 데리고 살아온 존재.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이 여행은 바로 그런 길이다.
문장들은 다정하다. 괜히 위로하지 않으면서 위로가 되고, 괜히 가르치지 않으면서 삶을 가르친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편지처럼 조용히 마음에 내려앉는다. 읽는 동안 괜히 엄마 생각이 나고, 괜히 지난 시간이 떠오르고, 괜히 지금의 내가 고마워진다.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고, 이제는 뒤를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의 풍경이 더 깊어졌다는 걸 이 여행은 담담히 말해준다. 돌아보는 일이 후회가 아니라 이해가 되는 나이, 지나온 시간이 아픔이 아니라 자산이 되는 시기. 그래서 비로소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혼잣말을 하게 되는 순간.
『칠십 여행』은 나이 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 들어서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여행기다. 그리고 그 말이 이상하게도 참 믿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이제 나는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조금 더 기대가 된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내 삶의 다음 풍경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칠십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