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동화책 속에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아이 손에 쥐어질 만큼 얇고 가벼운 책인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제주 4·3 사건과 동백꽃.
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야만 제대로 아파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동백꽃은 떨어질 때 꽃잎이 흩어지지 않는다.
한 송이 그대로, 툭— 하고 떨어진다.
그래서 더 아프다.
끝까지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쓰러진다는 사실이,
그 시대에 사라져 간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이들의 삶이 꽃 한 송이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동백꽃을 좋아한다.
겨울 끝자락에 홀로 피어나는 그 단단함이 좋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시들지 않는 성정이 마음에 들었다.
샤넬의 카멜리아 역시 좋아한다.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그 꽃은 우아함과 여성성,
사랑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같은 꽃인데, 이렇게 다른 의미를 품고 살아간다.
이 동화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꽃은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는 늘 사람이 붙인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동백은 장식이고, 누군가에게는 기억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다.
이제 나는 동백꽃을 예전처럼 가볍게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쁘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게 된다.
이 꽃이 품고 있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말하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짧은 동화책 한 권이
꽃 하나의 의미를 바꾸고,
기억 하나를 마음에 심어놓았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너무 쉽게 소비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동백을 오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