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죄인> 리뷰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각본에 종종 '범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형사절차에서 '범인'이라는 말은 거의 안 쓰입니다. 현장에서는 피고소인, 피혐의자, 피의자, 피고인이라는 말이 주로 쓰입니다. 물론 드라마 작가들도 그걸 알지만, 시청자들 귀에 익숙한 표현을 써야 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범인이라는 말도 잘 안 쓰는데 하물며 '죄인'이라는 표현을 수사기관에서 쓸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이 표현은 교회에서 더 많이 쓸 것 같습니다. 시리즈 제목이 <죄인>이길래 저는 당연히 종교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리즘이 제가 이 시리즈를 좋아할 확률이 98%라고 해도 종교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안 봤죠. 그러다가 지난 주말, 하루가 통으로 비는 바람에 침대에 누워서 리모콘을 누르다가 <죄인> 시즌1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알고리즘을 믿지 않은 후회는 컸습니다. 내가 왜 이걸 이제야 봤을까!
이 글의 제목을 '너무 흔한 말'로 정한 이유는 <죄인> 시즌1이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정말 너무 흔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고수나 민트초코가 싫다고 말할 때도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씁니다. 지금보다 더 흔해지면 학계가 트라우마라는 표현 자체를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트라우마' 대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좀 덜 흔한 표현을 쓰면 되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학계가 이미 버린 단어가 있습니다. '본능'이라는 단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요즘 대신 '전형적 행위 패턴' 또는 '종 특유 행동'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가장 무서운 증상은 재경험입니다. 외상 당시 내 몸이 느꼈던 통증을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재경험해야 한다면 사람이 살겠습니까. <죄인> 시즌1의 주인공 코라가 왜 죄인이 되었는가 하는 주요 키워드가 바로 이 재경험, 플래시백입니다. 시즌1의 소제목으로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뷰를 쓰되 스포일러는 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어서 코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다만 시즌1의 여덟 에피소드를 한나절에 몰아서 보고 난 다음, '와이더닛의 흡입력이 이렇게까지 강할 일인가' 하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우리들이 열광했던 대부분의 추(리)미(스테리)스(릴러)는 후더닛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누가 범인인지를 첫 에피소드에 알려줘버립니다. 후더닛 외에는 취향이 아니라는 사람들은 첫 에피소드의 한 20분만 보고는 채널을 돌려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이지 첫 에피소드만 끝까지 다 보세요. 그러면 시즌 전체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