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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벗 Jan 08. 2019

후배의 주례사

직장 동료(후배)가 지난 연말부터 고민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연애시절 때부터 지켜봐 온 후배 커플로부터 곧 있을 자신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후배는 불과 36살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주례 부탁을 받았으니 여간 고민스러운 일이 아니다.

주례자가 항상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것 또한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주례를 부탁한 신랑, 신부는 이미 양가 부모님께도 허락을 득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몇 번이고 거절했는데도 선배의 주례를 꼭 듣고 싶다고 재차 요청이 들어오는 상황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선배 같으면 이런 상황에 주례를 선다고 결정하나요? 거절하나요?” 후배는 나의 대답을 듣고 결정이라도 내릴 듯 물어왔다.

나 역시 친구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본 경험만이 전무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장의 답을 내 주진 못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식 사회를 본 친구 녀석은 몇 해 전 이혼을 한 상태다. 이후 나는 어떠한 결혼식의 사회도 다시는 맡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상황이다.)

잠시의 고민 끝에 내 대답은 이러했다.

“나 스스로의 삶과 결혼 생활을 진실되게 되돌아보는 일을 먼저 해 보겠다.”

진정성 있는 주례가 되려면 나 자신의 결혼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덧붙여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겠지만 후배의 거듭된 요청이라면 주례를 못 맡을 것도 없다라고 전했다.

내심 후배가 주례 요청을 승낙하고 스스로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것 또한 후배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19년 첫 주! 잠시 잊고 있었던 후배의 주례,

후배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주례를 맡기로 결정을 했다고 소식을 전하며, 자신이 작성한 주례를 한번 봐달라는 것이었다. 5분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된 주례사를 나에게 보여주며 고칠 부분이나 추가할 내용, 강조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하루 전날 밤 나는 아내와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한 상황)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주례사의 내용을 점검하겠는가 싶었으나 후배의 요청을 무시해 버리기는 어려웠다.


후배가 작성한 주례사의 요점은 이러했다.


첫째,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빈팀을 채워줄 것

둘째, 꿈을 잃지 말고 끊임없이 정진할 것(다만, 그 꿈이 배우자와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잘 어울린 것)

셌재, 나의 성장이 상대의 성장, 상대의 성장이 나의 성장임을 깨닮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


두 사람의 연애시절부터 지켜봐 온 후배의 애정과 사랑이 담긴 주례의 내용이었다.

딱히 고치거나 덧댈 부분이 보이지 않아 크게 손 보지 않았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일부 순서만을 바꿔 신랑, 신부와 하객들의 흥미와 집중도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편, 후배가 작성한 주례사를 읽고 있으려니 나 스스로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8년의 결혼생활 중에 나는 아내의 다름을 얼마나 인정해 왔지?

아내의 빈팀을 채워줄 수 있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진 않았는지.

아내의 꿈, 두 자녀의 꿈, 우리 가족의 꿈은 무엇이며, 그 꿈의 실현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배의 주례사를 통해 나 자신과 결혼생활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후배 역시 주례사를 준비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경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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