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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토가든 Feb 15. 2021

[이것이 생물학이다] - 생물학이 특별한 과학인 이유

서재를 채우는 일, 첫 번째

에른스트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

저자: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

역자: 최재천 외 6명

출판사: 바다출판사

제목: 이것이 생물학이다

원제: THIS IS BIOLOGY: The science of the living world  


생물에 대한 탐구는 수렵과 채집이 이루어졌던 인류의 출현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이 현재와 같은 체계적인 학문으로의 발전은 대부분 20세기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이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생물학자 중 한 명이 에른스트 마이어입니다. 그는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진화의 매커니즘에 대한 이론을 유전의 원리와 종합한 신종합설로 이끈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저술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생물학의 철학과 역사, 논쟁들을 소개하기도 했죠.     


[이것이 생물학이다]는 마이어가 말년기에 집필한 저서로, 생물학의 과학철학, 과학사, 연구 주제, 생물학을 관통하는 진화라는 주제를 깊게 들여다봅니다. 제가 임의로 구분한 책의 내용은 크게 1. 과학으로서의 생물학(과학 철학) 2. 생물학의 연구 주제와 발달(과학사) 3. 인류에게의 진화의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인 생물학의 지식이나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보다는 책의 제목과 같이, 생물학이라고 하는 학문에 대해 철학적, 역사적, 그리고 진화적 관점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물리과학과 생명과학의 특성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화학으로 필두되는 물리과학은 근대 이후 생물학의 급속한 발달 이전부터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물리과학은 측정의 오차는 있겠으나, 웬만해서는 이론과 법칙에서의 오류는 수용되지 않죠. 이러한 물리과학의 속성은 그대로 과학 분야 전반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져, 꽤 오랫동안 존재 해왔습니다. 마이어는 이러한 인식의 오류에 대해 꼬집습니다. 물리과학의 방법론으로는 모든 생명 현상을 밝힐 수 없고, 따라서 서술적 접근과 귀납적 방법이 요구되는 생물학의 분야들이 많은데, 철학자들은 이런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물리과학의 특성과 발달 역사만 고려했기 때문에, 토마스 쿤이나 칼 포퍼와 같은 과학철학자들의 개념이 과학 전반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분자 생물학자가 아닌, 진화 생물학을 연구하는 현장 생물학자로서 마이어가 느끼는 과학철학의 한계는 더욱 컷겠죠. 마이어는 창발성, 유기체주의, 서술과학으로서의 생물학, 다원주의, 확률론, 근접인과와 간접인과, 개체군적 사고, 인지적 진화인식론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생물학이 물리과학, 철학, 역사학 등과 어떻게 다른 학문인지 소개하면서 뛰어난 생물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중반부에서는 생물학의 탐구 주제는 ‘무엇’의 문제, ‘어떻게’의 문제, ‘왜’의 문제로 구분하여 각 생물학의 분과 학문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생물 연구의 맥락을 파악함으로써 생물학의 구조와 이론의 발달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다만, 진화생물학자로서 마이어는 분자생물학 분야에 정통하지 않음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주로 분류학, 생태학, 진화 생물학 등 거시 생물학 분야에 집중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분자 유전학을 필두로 미시 생물학적 사실이 주류가 된 현재 생명과학의 경향을 고려하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나,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하여 분자 생물학의 발전을 촉발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물학사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부분에서 분류학, 발생학, 진화 생물학, 생태학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먼저 ‘무엇’의 문제에서는 생물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생물들에 대한 분류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 후에 생명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는 분과를 소개하는데, ‘어떻게’의 문제에서는 수정란이 어떻게 하나의 개체로 발달하는지에 대한 근접 인과를 다루고 있는 발생 생물학의 역사를, ‘왜’의 문제에서는 생명 현상의 궁극 인과를 설명하는 진화 생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근접 인과와 궁극 인과적 설명이 모두 필요한 생태학의 역사도 독립된 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마이어가 생물철학자로서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동시에 괄목할 생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이기도 해서라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진화와 인간 윤리의 진화적 기원에 대해 다루는 장에서는 진화 생물학자로서 인류와 관련된 시사점을 제시하기 위함인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행동, 윤리 등은 오롯이 진화 생물학적 서술 형태로 접근하는 진화 심리학 분야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마이어는 인간 윤리와 도덕성의 기원을 열린 행동 프로그램, 즉 사회 생물학과 학습 및 교육 효과의 융합으로 설명하는데는 공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부에서 생명 과학을 공부하면서도 깊이 탐구할 기회가 없었던 생물학의 과학철학, 과학사적 분석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쉽지만은 않지만, 생물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있는 학생 또는 일반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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