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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토가든 Mar 10. 2021

18 - [데미안] 완독

2021.03.07-03.09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완독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오랜만입니다. 휴독을 하더라도, 예고 없이 글을 안 쓴 적은 처음인데, 미친듯한 일정과 피로감에 사로 잡혀 브런치를 돌볼 여유가 없었네요. 그래도 독서는 쉬지 않았습니다. [데미안] 드디어 다 읽고 돌아왔습니다.


제 브런치에 아주 조금의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1. 구독자 한 분께서 매거진 운영에 대한 조언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분의 의견에 따라 단순히 '독서노트01~' 식의 제목 대신에, 번호 뒤에 글의 주제를 담은 간단한 카피를 넣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그리고 타이틀 컬러도 제가 좋아하는 색으로.. 넣고, 어떤 책을 완독한 날에는 그 책의 분위기나 표지와 어울리는 색상을 걸려고 합니다.


2. 이건 제 신상과 관련이 있는데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일이 아주 많을 때와, 여유가 있을 때의 변동이 큽니다. 독서량은 거의 제 업무량에 반비례합니다. 그리고 업무에는 제 일과 관련된 '공부'도 포함이 돼요. 이 공부라는 게 독서와는 결이 많이 다르지만, 또 하나의 지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독서노트에 적을 것이 없는 날에는 그 날의 공부한 내용에 대한 기록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날이 드물길 바라지만요.


이 정도입니다. 


아무튼, [데미안]은 저에게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작품입니다. [죄와 벌]과는 문체도, 분위기, 주인공의 성격도 너무나 달라 신선했지만, 직관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표현들로 어떻게 보면 [죄와 벌]보다 어려운 구절들이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가슴 뜨거웠던 어린 시절과 폭풍 같았던 그 시절 그때의 기억들을 싱클레어의 삶에 투영시켜 보며, 많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도 많이 공감되고요. 거두절미, 짧은 소설임에도 인상 깊었던 구절들이 매우 많으니, 소개하겠습니다.


아래에는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데미안] 중에서

-4. 베아트리체-


'내 속에서 창문 하나가 활짝 열린 듯했다. 세계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끔찍하게 오래 나는 영혼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가!' - 96p

★벡과 함께 술에 처음 입을 대며 느낀 싱클레어의 감상.


'내가 이제 새로운 친구들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외롭고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나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 102p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혼자가 되지도 못한다.


'얼마만큼의 감동 없이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없다. 나는 더없이 열렬한 노력으로,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하여 <환한 세계> 하나를 지으려 다시 노력해 봤다.' - 107p

★베아트리체로부터 무언가 구원을 받고 다시금 삶의 동력을 얻는다.


'이 변화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나를 그 누구에게도 접근시키지 않았다. 나를 오직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 어딘가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데미안을, 먼 운명을, 내 스스로야 몰랐다. 그 한가운데 있었잖은가.' - 120p

★다시 정상적인 학생으로 돌아오게 된 변화는 데미안과 운명을 향한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123p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문구이자, 주제를 담은 문장. 개개인은 하나의 세계인 알에 갇혀 있다. 스스로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투쟁하여 이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압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125p

'데미안은 당시에 말했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 125~126p

'내가 바로 이 예감의 꿈 속에서 압락사스를 불렀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혔고, 깊은 죄에는 지극한 청순함을 통해 충격을 주며. 나의 사랑의 꿈의 영상을 그러했다.' - 128p

★선악의 양면을 갖는 신이자 악마인, 압락사스. 우리는 그것을 향해야 한다. 이는 싱클레어의 꿈에서 하나의 영상으로 나타난다.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 있었다. 늘 내 위에 있었다.' - 128p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129p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 131p

★두 번째 주제 문구. 그토록 어렵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개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운명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중략)… 인류가 멸종하고,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어린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이 아이는 사물들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그 애가 신이 되어 수호신, 낙원, 계율과 금기, 신약과 구약,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 142p

★우리 각각이 하나의 세계고, 그것이 개성이다. 동시에, 진화의 계보와 신과 악마, 모두가 우리들 속에 있어, 모두가 사라지고 인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거쳐온 모든 과정이 재건된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 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에서 짓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를 뚫고 마침내 나의 노란색 새가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자유롭게 쳐들어,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 144p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마는 싱클레어



-6. 야곱의 싸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 147p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152p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깊이 느끼게 되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가 나에게 준 것을 그 자신에게는 줄 수 없었으며 내 눈에 비쳤던 그의 모습도 그의 실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는 길잡이인 자신도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 169p

★피스토리우스는 길잡이일지라도, 데미안과 같은 초월한 인간은 아니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 171p

★피스토리우스와의 결별 이후, 자신에게 찍힌 카인의 표지를 느끼고 각성한 싱클레어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무(無)에로 던져졌다.' - 172p

★던져진 돌은 인간 개개인이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삶이 시작된다.


 

-7. 에바 부인-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 182p

★공동체의 모순을 꼬집고, 개인으로서의 자아실현과 개성을 잃어버린 채, '서로에게로 도피'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데미안


'「그건 늘 어려워요, 태어나는 것은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았던가요?」' - 190p

★이 문장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우리가 의무이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이런 것이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느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들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기꺼이 살리라는 것.' -196p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였기 때문에, 오로지 그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어. 그것은 모세와 부처에게 적용되고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에게도 적용되지.」' - 197p

★헤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영향을 받은 구절일까? 라스콜니코프의 사상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물론 라스콜니코프는 그로 인해 파멸을 맞았지만.


'「지표 위에서 일어난 지각 변동이 물에 살던 동물을 뭍으로, 뭍에 살던 동물을 물로 던져넣었을 때, 그때 운명에 준비된 예들이 있었지.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것을 완수하고 새롭게 적응하며 자신의 종(種)을 구해 낼 수 있었던 예들이 말이야. 누가 전에 그들의 종 안에서 보수주의자, 현상 유지자들이었는지, 혹은 괴짜며 혁명가였는지, 우리는 지금 몰라. 다만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모든 것 너머로 그들의 종을 건져 새로운 발전 속으로 구해낼 수 있었어.」' - 197~198p

★이번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영향을 받을 구절일까? 이는 어떤 생물 종의 유전적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한 종에 변이가 많을수록, 급격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개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즉, 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을수록 멸종 가능성이 낮다. 이와 관련하여 나도 인류 내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슷하게 갖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8. 종말의 시작-


'처음에 나는, 총격의 선정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실망했다. 예전에 나는 한 인간이 하나의 이상을 위하여 살 수 있는 일이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었다.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위해 죽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것은 개인적 이상, 자유로운 이상, 선택한 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떠맡겨진 공동의 이상이었다.' - 217p

★개인의 이상을 위해 던져짐이 아니라, 국가의 이상과 이데올로기에 얽혀 소모되고 희생되는 개인들의 비극을 나타낸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수어져야 했다.' - 218p

★군인들의 살의가 적군을 향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의 세계를 부수어 자유를 향하기 위한 영혼의 발산이라는 것을 느낀 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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