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살든, 결국 나를 만나게 된다"
※ 아래 글은 작년 하반기에 작성한 n회차 독서 기록글을 브런치 스토리에 적합하게 수정한 것이다.
작년 하반기, 온라인 독서 모임 '그믐'에서 '엠마네오빠'라는 닉네임으로 최초 공개한 버전이 있다.
그럼 시작하겠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했다.
"결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좀 시니컬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현실적이고
생각보다 따뜻하다.
1. 결혼은 ‘상호안전보장조약’이다
결혼은 둘이서 함께 살면서 서로 부양하고,
서로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 프로젝트다.
"행복해지자!"는 이상보단,
“지금보다 더 불행해지지 말자.”는 현실주의에서 출발한다.
이 말이 놀랍도록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큰 기대 때문에 무너지는 결혼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결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역설적으로 행복할 뿐만 아니라,
둘이 함께 유쾌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2. ‘결혼식’은 선언, ‘결혼생활’은 생존기
결혼식이란 건 우리 둘이 진짜로 팀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종교적 맹세는 이런 뜻이다.
'신이시여, 부처님이시여,
우리 둘의 애정어린 지금의 감정 따위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제발 좀 축복과 가호를 내려주세요!'
3. 혼인신고 안 하고 살거나, 결혼계약서를 쓰는 사람들
우치다는 이런 선택을 '자기 판단의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욕망'이라고 본다.
“헤어지더라도, 내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인간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불행해지는 쪽을 택하는 동물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떠올랐다.
‘틀렸으면 고치라’는 공자의 말.
이는 시대불변이다.
4. 부부는 ‘양극 권력 구조’다
단둘이 살아도 권력 관계는 생긴다.
민주주의가 성립되기 가장 어려운 공간이
바로 부부 사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선정을 베푸는 왕은 드물고,
한쪽이 독재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함께 민주주의를 연습할 수 있다면
그건 가장 작은 단위의 정치 실험실이자,
가장 소중한 공화국이 될 수도 있다.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권력을 나누고,
그림자 속의 노동까지도
꺼내어 놓는다면,
부부라는 가정의 공간도,
조금씩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곳이 될 수 있다.
5. 가사 분담 다툼의 유일한 해결책
우치다 타츠루는 다음 규칙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가사는 누구의 담당도 아니다.”
이는 기가 막히게 단순하지만,
놀랍도록 실효성이 있다.
그에 따라,
"문제를 인식한 사람이 책임진다."
청소가 눈에 들어왔으면 그게 당신 몫이고,
설거지가 보였으면 그게 당신 차례다.
결국 집안일이란
역할 분담이 아니라 감지 센서 게임이다.
그러나, 우치다 타츠루의 규칙이
항상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감지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도
현실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의 상황과 인식 차이를 점검하고
조율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6. 가사일에는 적당한 자기기만이 필요하다
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어우, 이거 재밌네. 반짝반짝 너무 좋다.”
이런 자기기만은 해도 된다.
실제로 기분 좋아진다.
이걸 우치다는 ‘좋은 자기기만’이라고 부른다.
맞다. 가끔은 스스로 속여야 살아진다.
결혼생활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7. 결혼의 위기는 ‘작은 사치’에서 온다
결혼생활이 무너지는 건
생각보다 커다란 사치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작은 사치, 작은 허세,
작은 소비 과장이 삶 전체를 위협한다.
예로,
2+1 세일 티셔츠를 6장 사놓고도
"잘 아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된다.
8. 권태기?
상대 탓 아니다. 자기 문제다.
결혼은 권태기를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그 슬럼프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일이다.
권태는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내가 몰랐던 나를 마주한 것'뿐이다.
우치다의 말처럼,
“결혼은 누구와 하든, 결국 진짜 나를 만나게 되는 일이다.”
9. 결혼은 인류가 검증한 제도이다.
모두가 꼭 결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삶이 무너질 때,
함께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결혼이란, 그 사람 덕분에
내 무너짐이 덜 망가지게 되는 안전망이다.
10. 그리고, 부부란 원래.
서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맺어져
서로를 돕고, 서로를 위하며 살다가,
조금씩, 점점 닮아가는 관계다.
우치다는 말한다.
“기대치는 낮게, 삶은 유쾌하게.”
낮은 기대는 우리를 다치게 하지 않고,
유쾌한 협력은
소소한 웃음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소박하고, 현실적인 러브스토리다.
다음 글은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다룰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