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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Apr 29. 2024

07. 여보! 왜 그래? 왜 말이 없어?

세 번째 시련의 시작.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내 삶에 찾아왔다.

"자기야, 내일 태리 유치원 새 학기 시작하는 날이니까 자기가 그래도 유치원에 직접 가서 '태리 아직 한국에 있다'라고, 10월에는 꼭 올 거라고, 선생님 얼굴 직접 뵙고 얘기 좀 해줘요~ 그리고 유치원에서 준비물 리스트 같은 거 주면 챙겨 오면 좋겠는데..."


2020년 9월 6일 밤. (우리는 한국시간 기준 밤 9시 즈음(이탈리아 기준 낮 1시) 늘 비슷한 시간에 영상통화를 했었다. 남편은 자려고 누운 전화기 속 작은 아이에게 기도도 해주고 긋나이 인사를 매일 전해주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 꼬마가 다니던 이탈리아 유치원 새 학기 첫날, 그동안 코로나와 여름방학으로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드디어 만 4세 반 첫 등원날. 한국에 있는 아이대신 아빠가 다녀오는 간단한 미션을 주었다. 이탈리아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동양인 아빠가 아이 없이 혼자 방문하는 게 부담스러웠을까? 어째 내 부탁에 시원한 대답이 없었다.


"음... 알겠어..."


"번거로워도 꼭 직접 다녀와요. 꼭이요!!"




다음날, 정신없이 또 하루를 보내다 시계를 보니 이탈리아 유치원 등원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남편 차가 없으니(하루 전 갑자기 길에서 멈춘 뒤 정비소에 있는 상황) 분명 유치원까지 걸어서 갔을 것이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남편의 성격상 오고 가며 나한테 전화를 당.연.히 했어야 했다. 전화를 하지 않았을 다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뭐야 이 사람.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연락이 없지? 어제 대답이 어째 시원찮더니만.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이 일인데  귀찮다고 이런 부탁도 안 들어주나?' 마음속 혼잣말은 이미 남편에게 날이 서있었다. 괜히 서운한 마음에 언제 연락하나 두고 보자 했었다. (그때 왜 그렇게 꼬여 있었는지... 임신부 호르몬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나 큰 잘못을 했다.)


그 무렵 시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간밤에 너무나 끔찍한 꿈을 꿨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이게 별일 없냐, 늘 조심 또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리고는 남편이랑 통화를 했냐고 물으셨다. 꿈자리가 사나워 아들에게 현지시간으로 이른 아침에 보이스톡을 했는데, 전화를 받고는 아무 말이 없다면서 그 시간에 무슨 레슨이라도 하는 건가? 하며 의아해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남편이 연락이 없어서 통화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2020년 9월 7일 오후 6시경.  

남편에게 페이스톡을 걸었다. 영상통화가 연결되었다.

부스스한 머리, 부은 눈, 잘 때 입는 검정반팔 티셔츠. 남편은 누가 봐도 방금 일어난 듯 한 모습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머릿속에선 서운함이 이미 짜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기야, 뭐야~~ 내가 어제 그렇게 부탁했는데, 애 유치원 잠깐 들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볼맨 소리가 튀어나왔다.


작은 화면 속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배시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어색했다.


"뭐야, 왜 말이 없어요? 안 들려? 여보! 장난하는 거야?"


'뭐야, 말을 왜 안 하지? 전화기가 잘못됐나? 통신상 문제가 있나?'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다.


"여보! 왜 그래? 내 말 들려? 내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지금?"


"......"


"여보! 왜 그래? 왜 말이 없어? 응?"










남편이 가지런히 널어 둔 빨래들, 단무지용 무를 사다가 맛깔나게 담가놓은 깍두기. 5개월간 홀로 지내며 집안 구석구석 남겨둔 남편의 흔적들을 보며 눈물이 지체 없이 흘렀다.


한국행 특별 전세기를 고민고민하며 신청하던 3월의 기억, 말펜사 공항에서 유난스럽게 했던 눈물의 이별,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 버린 그날.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가슴이 미어질 것 만 같았다. 차가운 집안 공기 속에서 찢어지는 마음과 정신을 함께 붙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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